쿠데타의 본거지 임진강변의 덕진산성

날씨에 맞추어 사람의 목소리와 움직임도 닮아 가는 것처럼 흐린 날씨이어서인지 일요일의 아파트는 아무도 없는 듯 조용하다. 비가 온다고 하여 답사를 다음으로 미루려다 한 달 전부터 마음먹었던 일이라 등산화를 신고 덕진산성을 찾아 출발하였다.

멀리 보이는 민통선의 침엽수들은 봄기운이 물들어 가는 것이 느껴지고 임진강물이 바람에 찰랑거리는 것을 보자 묵은 겨울을 보내는 것처럼 마음이 상쾌해진다.

덕진산성은 1994년 군사유적에 대한 지표 조사때 새롭게 발견된 포곡식 산성(봉오리 중심으로 외곽에 성벽을 쌓는 방식)으로 인조반정 때 반군의 주력부대가 본거지로 사용하였으며 ‘80년 12월 12일 전두환 계엄사령관이 주축이 되어 일으킨 쿠테타에 동원된 금촌에 있는 제2기갑부대가 서울에 입성했던 것처럼 당시 광해군을 밀어내고 인조반정을  성공시킨 곳이기도 하다.

또 반란군에 참여한 장단부사 이서(李曙)의 부인이 남편을 기다리다 쿠데타가 실패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임진강에 투신하게 된 설화도 있는 산성이 다.

덕진산성은 현재 행정구역상 파주시 군내면 정자리 산 13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민통선 지역내에 있어 방문을 위해서는 군부대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문산읍 마정리의 통일대교나 파평면 율곡리의 전진교를 통하여 임진강을 건너 갈 수 있다.

통일대교를 건너 판문점으로 향하는 국도1호선으로 가다가 DMZ 입구에 있는 JSA 직전에서 우회전하고 정자리 방향으로 직진하면 전초TF라는 검문소를 만나게 된다.

전초TF 검문소에서 2km를 채 못가면 좌측에 백학산이 멀리 보이고 아래쪽에는 군부대 막사가 있는데 6.25 이전에는 장단군청이 있었으며 산 아래 쪽에는 장단향교가 있었던 곳으로 초석과 담장이 남아 있다.

동파리로 가는 도로에서 미군훈련장을 막 지난 후 우회전 하여 개울 건너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 가면 정상 쯤에서 삼거리를 만나게 되고 그 곳에서 포장 되지 않은 도로로 들어서면 인삼밭이 나오게 된다. 그곳에서 3백미터정도 올라가면 낮은 산을 만나게 되며 그곳이 덕진산성 주봉이 되고 고개를 넘어 서면 바로 임진강 쪽으로 봉오리가 하나 더 있고 내성의 중심부가 된다.

성곽 안에는 봄 기운이 이제 시작되어서 인지 파릇한 새싹은 양지와 마른 갈대 아래에만 조금 보이고 전체가 갈색 빛이다.이 곳은 작년에 육군사관학교 화랑대연구소에서 시굴조사를 하면서 지뢰를 발견했던 지역으로 아직도 갈대와 잡초가 무성하여 사람의 출입이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

겨울철이나 숲이 우거지기 전인 지금 계절은 동물이나 사람이 다닌 흔적을 따라 다니기가 수월하나 여름철 숲이 우거지면 제대로 성곽의 형태를 알아 보기가 어려울 것이다.

덕진산성은 「대동여지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조선고적조사」등에 기록이 있고  조선왕조실록에는 여러번 등장하는데 조선시대 이전의 기록은 발견되지 않고 있어 대체적으로 삼국시대에 축조하여 사용하다가 광해군 말기(1662년)에 임진왜란시 일본의 임진강 도하를 제대로 막지 못하였던 이유로 재수축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덕진산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나누어져 있고 내성은 해발 85m 봉우리와 임진강변 쪽의 해발 65m 봉우리를 가운데 두고 산 능선을 따라 표주박 형태로 구축되어 있으며 , 내성의 성곽 길이는 481m이고 내성의 넓이는 축구장 1.5배 정도의 규모로 좁은 편이다.

외성 길이는 948m 정도되며 내성 북벽의 동단지점에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가다가 다시 임진강 방향으로 돌아서 내성 남단 쪽으로 이어지고 성벽은 삭토와 성토방법으로 토성을 구축하였으며 북쪽 방향의 성외벽은 석축한 흔적이 여기 저기 남아 있다.

내성을 조금만 걸어도 와편들이 발에 차일정도로 많이 볼수 있으며 이곳에서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기와편이 다량 채집되었고 특히, 고구려의 토기편과 와편도 포함되어 있으며 봉우리가 이어지는 경사면에 집수정 또는 우물지로 추정되는 곳도 발견되었다.

집수정은 내성 중심 부분에 비교적 완만하게 경사진 계곡을 성벽으로 가로막고 있는 성안 쪽에 4~5m의 깊이로 경사진 웅덩이로 되어있어 2004년 5월에 육군사관학교 화랑대연구소에서 시굴조사를 하였지만 별다른 결론을 내리지 못였다.

대체적으로 서쪽에 있는 성벽이 완전하게 남아 있지만 하층부와 상층부의 축조 방식이 다를 뿐만 아니라 석재도 차이가 있어 2차례 이상 대대적인 개축 공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대나 현재도 전략적 요충지 개념이 비슷해서 전망과 방어가 유리한 곳이 요충지가 되는 것처럼 이곳 서쪽 성벽에는 6.25 당시 성벽 위에 다시 참호를 만들었던 흔적이 남아 있으며 답사 중에 당시 병사들이 사용하던 M1 소총의 탄피도 발견 되었다.

덕진산성 남쪽에는 임진강 내 유일한 섬인 초평도와 멀리 파주시 문산읍 장산리가 보이는데 초평도는 조선왕조 실록에도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이 곳에서 S자로 물길이 급하게 돌면서 상대적으로 유속이 떨어지는 반대쪽에 토사가 퇴적되어 발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내성을 어느 정도 답사하고 서쪽 방향 외성의 성곽을 향해 가면서 고라니의 배설물이 여기 저기에서 발견되었으며 사람이 다닌 길이기보다는 멧돼지나 고라니 같은 들짐승이 만든 길이 많이 나 있고 인기척에 놀라 고라니가 날쌔게 도망가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성 내부에는 아직 갈대가 무성하지만 갈대와 잡초의 대부분이 동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임진강이 서해와 연결되어 서풍이 많은 곳임을 알 수 있다.

덕진산성은 아직 본격적인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제대로 성곽을 볼 수는 없었지만 임진강가에 몇 개 안되는 성으로 북쪽에서 내려오는 적으로부터 덕진나루를 보호하고 남쪽에서 올라오는 보급선을 연결하는 요충지로 보인다.

이 곳을 답사하기 전에 자료를 조사하면서 민통선 지역 설화 중에 덕진당에 관한 설화를 보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인조반정때 주력부대를 이끈 장단부사 이서에 관한 사실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조반정은 1623년 서인이 광해군과 북인 정권을 몰아내고 능양군 종(인종)을 왕으로 옹립한 사건으로 보수적이고 사대적이던 서인세력이 서자이면서 차남인 광해군의 대청외교와 북인의 중용에 반발하여 1620년부터 신경진이 반정 계획을 잡고 구굉, 구인후 ,김유, 이귀, 최명길 등을 포섭하여 진행 시켰었다.

이 모반계획은 거사 직전에 누설되었으나 김자점과 심기원 등이 후궁에 청탁을 넣어 무마시키고 관련자를 외직으로 보직 시키면서 그 중에 이서가 장단부사가 되어 덕진에 산성을 쌓고 군졸을 모아 훈련을 시키게 되었다.

1623년 3월 12일에 이서는 7백여 군졸을 이끌고 한양 연서역에서 이괄과 합류하였으며 창의문과 돈화문으로 진군하여 쿠데타를 성공하고 다음 날 인종이 즉위하게 되었다.

덕진당 설화는 이런 과정에서 이서가 장단을 출발할 때 부인에게 실패하면 돌아 오는 나룻배에 흰 기를 달고 성공하면 붉은 기를 달겠다고 약속하였는데 멀리에서 오고 있는 나룻배가 백기를 달고 있는 것을 보고 이서 부인이 임진강으로 투신하게 되었다.

이서가 도착하여 자초지정을 듣고 있을때 뱃사공이 무릎 끓고 사죄하였는데 날씨가 더워 저고리를 벗어 걸었고 그 저고리 때문에 붉은 깃발이 가리게 되었다고 말하였다.이서는 아내가 몸을 던진 언덕에 덕진당이라는 재각을 짓고 원혼을 위로 하였으며 임진강가에 사는 어부들은 풍어나 수재를 막기 위해 기원제를 지냈다는 이야기도 전해내려 오고 있다.

지금 덕진당에는 재각이 없지만 임진강에 가까이한 봉오리에는 10여평의 평지가 있으며 봉우리가 강가로 돌출된 형상을 하고 있어 임진강 경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이서의 부인이 투신한 장소가 궁금하여 강 아래로 가보고 싶은 마음에 삼거리에서 큰길로 들어 오던 반대 쪽으로 차를 몰고 갔다.

10여분을 강쪽으로 갔더니 제방이 나오고 제방따라 서쪽으로 올라가다 보니 제방이 덕진산성 산자락에서 끝나게 되어 있었다. 제방 아래로 내려가 강변에 있는 갈대숲을 따라 10여분 걸어서 덕진산성 아래 부분으로 갈 수 있었다.임진강변에서 덕진산성 바라보니 경사면이 80도 이상 되고 이름 모를 나무들이  무성하였으며 초평도가 바로 눈앞에 들어올 정도로 가까이에 있었고 바닷가에서나 들을 수 있는 파도소리가 들려 왔다.

농부들의 손길이 바빠지고 임진강변에 자라는 마늘이 푸르게 짙어 가는 봄의 문턱에서 이번 답사를 통하여 임진강변에는 역사의 자취가 유난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또 공교롭게 인조반정이 1623년 3월 12일에 거사되었고 제5공화국 건국에 단초를 제공했던 군사 쿠데타가 1980년 12월 12일에 이루어졌다는 것과 파주의 장단과 금촌에서 출발한 주력부대가 서울에 입성하여 쿠데타를 성공했던 역사때문에 윤회에 대한 상념을 가져볼 수 있었다.

돌아 나오는 길에 천연 기념물인 재두루미 한 쌍이 논바닥에 다정하게 서 있는 것을 뒤로 하면서 통일대교를 건너오며 답사를 마쳤다  < 2006.3.20, 이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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