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파주인 이다’ 회고록을 마치며

송달용 전 파주시장 인터뷰

 

‘나는 파주인이다’ 회고록을 작년 4월부터 올해 9월 11일까지 파주이야기에  71화로 나누어 게시하였습니다.연재를 마치고 저자인 송달용 전파주시장과 메일로 인터뷰한 내용을  게시합니다.                -파주이야기 편집자 –

 

회고록 집필할 때와 지금의 생각이 다른 것이 있는지요?

그동안 파주이야기에 ‘나는 파주인 이다’ 를 게시해 준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나는 회고록을 쓸 생각은 꿈에도 없었습니다.

내가 살아온 과정을 자랑할 것도 없고 설혹 있다 하더라도 자화자찬(自畵自讚)이 될 것 같고, 또 유명인도 아닌 시골 민선 군수시장을 지낸 사람의 이야기를 누가 읽을 것이냐 하는 생각에서 감히 쓸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45년간의 공직생활 중 17년동안 파주에서 통일로 개통과 남북 적십자회담을 위한 주택 정비·개량, 기지촌 정비사업, 파주군에서 파주시로 승격, 3년간 연속적인 수해, 신도시 개발 등의 격동기를 내무과장, 부군수, 관선 군수와 민선군수, 민선시장을 보내면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특히, 민선시대(民選時代)에  중앙부처나 도지사의 방침에 의한  사업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소신것  추진한 사업을 중심으로 어렵고 힘들었던 일들의 뒷 이야기를 남기는 것도 뜻이 있다고 생각이 되고 얼마 남지 않은 인생에서 내가 사라지면 그 애틋한 이야기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되어 많은 고민 끝에 회고록을 쓰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나 퇴직후 10여년간 자유인(自有人)으로 마음것 즐기다가 막상 펜을 잡고 보니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모든 사업을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사업계획을 검토하고 결정하였을뿐 아니라, 추진 방향 제시와 확인·점검까지 직접 하였기 때문에 모든 기억이 새롭게 떠 오른것이 다행이었습니다.

6개월간 열심히 원고를 작성하였고 통계숫자는 시청 직원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 회고록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와 같이 동고동락했던 모든 동료 공직자의 정성어린 이야기를 내가 대필 한 것 뿐입니다.

파주시는 지리적인 여건으로 보아 휴전선 DMZ와 연접해 있고 수도 서울과는 40km의 가까운 거리에 있어 우리나라 안보의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규제와 통제로 파주발전에 많은 어려움을 받아 왔습니다.

‘나는 파주인 이다’ 라는 회고록 쓰면서 새롭게 느낀 것은 무슨 용기를 갖고 어떻게 그런 일을 성사 시켰는지 가슴 벅찬 보람과 아쉬움이 엇갈렸습니다.

먼저 보람있는 일들을 몇 가지만 생각해보면 주민들이 상여 메고 통곡하며 결사 반대하는 것을 무릅쓰고 난개발 방지와 주민 생활향상을 위한다는 신념 하나로 운정신도시를 개발하여 지금의 파주시가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임진강 범람으로 1996년, 1998년, 1999년의 연속 3년간 대홍수로 문산 시가지가 두번이나 침수 된 것은 물론, 파주 전역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을 때입니다.

주민에게 인재라는 원망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시는 홍수재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임시복구가 아닌 항구 복구를 위하여 경기도와 중앙 각 부처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어 다니며 예산을 확보하여 저지대 양수장을 설치하고 하천 제방 개보수로 이제는 주민이 안심할 정도의 믿음을 갖게 하였습니다.

대기업의 불모지인 파주에 세계적 기업인 모터로라 ( 현재 ASE코리아)  유치를 위해 토지 매입에서부터 공장 부지정리 상하수도 도시가스, 묘지 이장까지 군(郡) 에서 위탁 받아 직접 처리하면서 공장이 조기에 준공 될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대기업을 유치한 것을 계기로 L.G 필립스 공장이 월롱면 덕은리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기초를 닦았습니다.

제3땅굴 개발은 국방부와 파주시 간 개발협약서를 작성하여 파주시가 투자하고 운영권을 갖도록 하여 파주의 관광명소로 자리 잡고 매년 평균 23억원 정도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으며  탄현면 통일동산 내에 공공용지 2만평 부지에 국가대표 축구선수 훈련장(N.F.C) 시설을 대한축구협회가 시설투자하고 20년 동안 무상으로 사용한 후에 파주시에 모든 시설을 기부체납토록 하여  2018년부터 축구장 운영권을 파주시가 갖고 운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혐오시설이라고 하는 쓰레기 소각장을 탄현면 낙하리에 설치하고 환경사업으로 전환하기 위하여 폐열을 이용한 수영장과 축구장을 조성하여 많은 시민이 활용하고 있으며 특히 LG다스플레이에 폐열을 매각하여 매년 30억원의 세외수입을 올리고 있습니다.

농민의 소득을 위한 장단콩축제 개최와 자운서원정비는 물론 내면의 사적지 덕진산성 국유지를 개인이 불법으로 등기한 것을 환수하여 자운서원과 같이 국가 지정문화재로 개발하였고 해마루촌 수복마을 조성은 출입 영농하는 장단군민의 불편을 덜어 주고  6.25전쟁이후 최초로 60세대의 정착영농토록 한것 등은 보람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아쉬웠던 일은 주민과의 벽을 없애기 위해 읍면동에 울타리를 모두 철거하고 부담 없이 자유로이 주차장으로 이용토록 하였으며 주민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기위해 매주 금요일에 시장과 대화시간을 정하여 주민의 민원을 직접 해결한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임진강 한 복판에 있는 초평도를 매입하여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경기도지사에게 건의하여 보조금150억 원을 확보하였으나 임진강의 대홍수로 초평도가 범람하는 바람에 개발을 포기하고 대신 임진각과 통일대교 사이 20여만평의 토지를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탄현면 통일동산에도  국제 태권도장을 조성할 목적으로 부지  8만5천평을 역시 도비 140억원의 보조금을 받아 구입 하였으므로 당연히 파주시 소유로 등기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경기 소유로 등기됨에 따라 임진각 주차장을 제외한 주변의 토지는 지금 경기도 관광공사가 관리 운영하고 있으며 태권도부지는 용도변경하여 경기도가 영어마을을 조성하여 운영하고 있어 매우 안타까운 일로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회고록 출판 이후에 다른 활동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경기도민회장으로서 1,300만 경기도민의 친목과 화합을 다지고 경기도 인재 양성을 위해 봉사하고 있습니다.

경기 도민회는 1986년 재경 경기도민회로 창립하여 운영 하여 오다가 1993년 재경을 빼고 경기 도민회로 명칭을 변경 하여 경기도민이면 누구나 참여 할 수 있도록 범위를 넓혀 운영 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인재 양성을 위하여 장학금 204억 원을 조성하여 대학생 400만원 전문대생 300만원 예체능 고등학생 100만원의 장학금을 매년 500여 학생에게 12여억원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12,900명에게 180억원의 장학금을 지원하였습니다.

서울 도봉구 수유동에 장학관을 설립 운영하고 있습니다. 공부를 잘하면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 384명을 시군 별로 골고루 선발하여 매월 15만원의 자부담으로 숙식을 제공하며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장학관을 거처 간 학생은 3.850명이나 됩니다.

한편 경기인지(京議人誌)를 격월로 3.200부를 발간하여 경기도정 소식과 31개시군 시책을 소개하고 회원 상호간의 정보를 교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기도에 주민등록이 되어있고 복지혜택을 받고 있는 경기도민은 출신도와 관계없이 경기도민으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열심히 봉사 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삶을 위한 비결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법정스님이 쓴 ‘무소유’란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욕심부리지 말고 자기 생활에 꼭 필요한 것만을 가지라는 것 입니다.

넓은 바다는 메울 수는 있어도 작은 사람의 욕심은 메울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모든 병의 근본 원인은 스트레스를 받는데서 생긴다고 합니다. 나의 스트레스를 해소 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시(詩) 한수를 소개 할까 합니다.

 

청산(靑山)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명월(明月)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 네

욕심(德心)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바람 같이 구름 같이 살다 가라 하네

 

고려 고승 나옹선사가 지은 시 입니다

글을 읽으면서 무소유의 마음으로 편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또한 인생의 운명은 대자연의 법칙을 벗어 날 수가 없습니다

 

한손에 막대 잡고 한손에 가시 쥐고

늙는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白髮)막대로 치렀더니

백발이 저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우탁의 시조 탄로가(雲老 歌)입니다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空手來空手法)의 자연의 순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마음으로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파주시장 장기 부재에 따른 후배 공무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 드립니다 .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파주에 왜 이런 일이 한번이 아니고 두 번씩이나 발생하는지 파주인으로서 참으로 부끄럽고 분노까지 치밀어 오릅니다

파주라는 큰 배가 목적지의 방향을 잃고 망망대해에 선장 없이 불안하게 표류하고 있습니다. 이럴때 공직자들의 기강이 해이해 지거나 업무를 소홀히 한다면 이는 파주시와 파주시민의 불행입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흔들리는 항로를 바로 찾아 가야합니다. 그것이 현 파주시 공직자의  몫입니다.

세계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 였습니다. 지휘관이 명령하는 대로 생사를 가리지 않고 앞으로 돌격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휘관이 전사하고 명령권자가 없을 때 독일 군대는 자기의 책임과 의무를 모르기 때문에 지리멸열(支離滅裂)하여 가장 약한 군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미국군대는 외형상 약한 군대같이 보이지만 미국 군인은 각자 자기가 해야할 책임과 임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지휘관이 전사하고 명령이 없다 하더라도 스스로 자기의 책임과 임무를 수행 함으로서 약하게  보이지만 강한 군대입니다.

파주 후배 공직자는 시장이 없다 하더라도 파주의 발전방향을 향해 자기가 맡은 책임을 갖고 창의력을 발휘 한다면 파주시민은 믿음직한 공직자를 믿고 불안감에서 벗어 날 것이고 파주는 미래가 보장되는 살기 좋은 파주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무쪼록 건강하고 최선을 다 하는 공직자가 되어 주실 것을 기원합니다.

20117년 9월 13일   송 달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