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대생의 고백-도전리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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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여대생의 고백-도전리에 가다

  -송달용 전 파주시장 회고록 제53화-

1963년 3월 14일 여주군 2대 공보실장으로 부임했다. 공보실 직원은 정규직원(여) 한 명과 영사 기사 한 명 그리고 나까지 세 명이었다. 말이 공보실장이지 과(課)의 계장만도 못했다. 공보실장의 업무분장을 보면 주 업무가 군청의 시책 홍보이지만 인력과 장비가 턱없이 부족하고, 군정 홍보지를 만드는 것도 인력과 예산의 한계가 있어 힘이 들었다.

임무를 다하기 위해 군정 홍보를 위한 읍·면 순회 영화 상영을 하면서 직접 군청의 시책 전반에 대하여 주민들에게 설명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당시 영화 상영을 하려면 부락에 전기가 없기 때문에 자가발전기가 필요하였고 이 외에도 영사기, 스크린 등도 운반해야 했다. 그래서 군수의 일정이 없는 시간에 군수 지프차에 트레일러를 달고 처음 상영하는 부락에 운반하고 영화를 상영 후 다음 영화 상영 부락으로의 이동은 그 부락의 우마차를 이용하여 릴레이 식으로 운반하였다.

당시 이재덕 군수님에게 군수님들은 한 번도 가본 일이 없는 여주에서 가장 오지인 강천면 도전리 마을에 학교장도 격려할 겸 가보자고 건의했다. 당시 군청에 교육과가 있어 학교관리도 군수에게 권한이 있었다. 군청에서 강천면 도전리 까지는 약 30리(12㎞) 정도인데 옛날에 벌목할 때 GMC트럭이 다니던 비포장도로와 산과 하천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세 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그래도 한번 가기로 했다.

때는 추석 직전이라 마을에는 대추가 빨갛게 물들고 밤은 입을 벌리고 있었다. 학교는 교장 선생님과 남자교사 1인, 여교사 1인 그리고 학교 급사 1인 모두 4인이 근무하고 있었다. 영화 상영은 해가 어둑한 밤 8시 30분쯤 시작이 되었다. 교장은 군수가 마을이 생기면서 처음 방문하는 것이라 많은 신경을 쓴 것 같았다. 급사를 시켜 강천면 사무소 소재에 가서 소주를 사오라고 심부름 시키고 교장 관사에서는 소주가 오는 시간에 맞춰 닭볶음탕을 끓였다. 급사는 자전거를 타고 갔다. 말에 의하면 자전거는 타는 것보다 끌고 가는 길이가 더 많다는 것이다.

영화가 다 끝난 11시가 되었는데도 급사가 오지를 않았다. 교장의 체면을 보아 그냥 돌아올 수도 없고 소주 한잔을 하자니 너무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 진퇴양난에 처했다고 생각할 때 급사가 도착했다. 늦은 이유인즉 오는 도중에 자전거의 체인이 끊어져 이웃 동네에 맞기고 오느라고 늦었다고 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여 12시가 거의 다 되어 도전리를 출발했다. 길은 없고 지프차에 트레일러를 달고 오는데 돌에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지프차 미션에 이상이 생겨 소리도 나고, 어두워서 길을 더듬어 가면서 가까스로 북내면 사무소에 새벽 4시가 되어 도착했다.

군청 숙직실에서 전화를 걸어 군청에서 도선 뱃사공에게 찾아가 곤히 잠들어 있는 뱃사공을 깨워서 북내면 도선장에 온 것이 아침 6시경이었다. 밤을 꼬박 새운 것이다. 어느 여대생의 고백과 같이 도전리의 밤을 새운 고백을 이제 하면서 그날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자료파일 제공  도서출판 헵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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