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파주인 이다’ 회고록을 마치며

송달용 전 파주시장 인터뷰   ‘나는 파주인이다’ 회고록을 작년 4월부터 올해 9월 11일까지 파주이야기에  71화로 나누어 게시하였습니다.연재를 마치고 저자인 송달용 전파주시장과 메일로 인터뷰한 내용을  게시합니다.                -파주이야기 편집자 –   회고록 집필할 때와 지금의 생각이 다른 것이 있는지요? 그동안 파주이야기에 ‘나는 파주인 이다’ 를 […]

내가 살던 풀무골 -제35화-

내가 살던 풀무골 -송달용 전 파주시장 회고록 제35화- 야동리는 풀무골, 창골, 원골, 두문골의 네 개의 자연 부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내가 태어난 곳은 풀무골이다. 우리 동네 북쪽의 안데무골이란 곳에서 부터 시작되어 흐르는 실개천은 교하 벌판 중심으로 흐르는 공능천(曲陵川)까지 연결되어 장마철이 되면 이 실개천을 따라 벌(野)에 모래가 쌓어 이름 붙여진 모래턱에 허름한 […]

월롱산(月籠山)을 지키자는 다짐은 허공으로 -제31화

월롱산(月籠山)을 지키자는 다짐은 허공으로 -송달용 전 파주시장 회고록 제31화- 바구니에 달을 담은 듯 아름다운 산을 월롱산이라고 하였다. 1972년 내무과장으로 있을 때 모처럼 탄현면 무소 출장을 가는 중에 월롱산을 바라보니 그 아름다운 중턱을 불도저가 굉음을 울리며 태고의 벌건 속살을 드러내며 도로를 만드는 광경을 보았다. 깜짝 놀라 귀청하여 산림과에 확인한 결과 산림과장 […]

대토농지를 경작하던 직천리 주민의 설움-제20화-

대토농지를 경작하던 직천리 주민의 설움   -송달용 전 파주시장 회고록 제20화- 깊숙한 두메산골, 그곳의 평화롭고 순박한 사람들은 생활을 겨우 유지할 정도의 농경지에서 가난을 숙명으로 알고 불평도 없이 오순도순 그들만의 정을 나누며 열심히 살았다. 천현면 직천리(교두네, 벌말, 상상골, 한퍼, 음달말 다섯개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어 있음)와 오현리 주민들, 이들에게 1976년 청천벽력(靑天霹靂)과 같은 큰 파도가 […]

자운서원 정비사업과 주민이주대책 -제19화-

자운서원 정비사업과 주민이주대책   -송달용 전 파주시장 회고록 제19화- ‘자운서원’은 법원읍 동문리 자운산 기슭에 율곡 선생의 묘와 신사임당 묘를 비롯한 덕수 이씨 가족묘 13기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이곳 자운서원은 광해군 7년인 1615년, 조선중기 대학자인 율곡 이이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방 유림들이 창건하였다. 이이 선생은 1650년, 효종 원년에 자운이좌 […]

난개발을 막기위한 운정 신도시 조성-송달용 前파주시장 회고록-

난개발을 막기위한 운정 신도시 조성 -송달용 前파주시장 회고록<제14화>- 파주시는 동고서저(東高西低)의 한반도 지형과 유사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또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여 강화섬을 돌아 황해로 흘러 들어가는 곳으로 조선 15대 왕인 광해군 시대에는 한때 교하가 새로운 도읍지로 거론이 될 만큼 명당자리로 알려져 있는 고장이다. 어느 날 오후 파주 발전의 핵심을 어디에 두어야 […]

통일로변 주택의 슬레이트 지붕을 벗기다-제2화- 송달용 前파주시장 회고록

통일로변 주택의 슬레이트 지붕을 벗기다-제2화-   1978년 6월 13일, 강화부군수로 발령이 났다가 1979년 2월 1일 6개월 만에 다시 파주부군수로 발령이 났다. 파주로 돌아와 보니 남북적십자 회담과 카터 대통령의 한국방문을 대비한 통일로변 주택개량사업으로 180동의 물량이 파주에 배정되어 있었다. 당시 군수는 일시에 통일로 가시권내에 있는 모든 주택을 철거하고 주택개량을 한다는 것을 전 […]

송달용 전 파주시장 회고록 연재 안내

파주이야기는 2015년 5월에 출판된 송달용 전 파주시장의 ‘나는 파주인 이다’  회고록을 저자의 동의를 받아  전체 내용을 56회로 나누어 매주 연재할 예정이다. 이 회고록은 송달용 전 파주시장이  1958년부터 공무원을 처음시작하여 2002년 파주시장 재임까지 45여년간의 공직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파주군과 파주시에  17년간 근무하였던 35개 주제와 개인적이면서 공직과 관련된 내용 21개 주제 등 전체  56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