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시 청사 건물의 변화

일제강점기의 파주군청(문산소재)- 파주시청   1970년대 파주군청- 파주시청 1976년 파주군청-정문옆 경비실 공사중- 파주시청 1970년대말 파주군청-정문입구 우측 농촌지도소- 파주시청 1984년 파주군청- 파주시청 1984년경 파주군청 –파주시청 1980년대 파주군청- 파주시청   2007년 파주시청-파주시청 2009년 파주시청 전경- 파주시청 현재 파주시 청사는 1972년도에 2층으로 건축되었다가 그 후 1개층을 증축하여 3층 건물이 되었습니다. 본관에 이어 신관을 증축하였고 […]

휴전선 최북단 대성동 새 태극기 달기

교체할 국기 내리기- 민통선 고정나사 풀기 — 민통선 새 태극기 꺼내기 — -민통선 태극기 걸기– 민통선 태극기 고정 마무리 —민통선 태극기 올리기 준비– 민통선 태극기 올리기– 민통선 태극기 교체 완료 —민통선 군사분계선과 인접한 대성동 마을에는 국기게양대가 있다. 이 국기 게양대의 높이는 99.8m로 국내에서 가장 높고 태극기도 가로 18m, 세로 12m […]

파주는 부대찌개 원조가 아니다?

부대찌개하면 의정부 부대찌개가 원조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의정부시에서는 2006년부터 매년 9~10월에 부대찌게 축제를 열고 시가지 중앙로터리 부근에 부대찌개 명물거리를 만들면서 원조로 더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음식이라는 것이 재료와 기법이 다양하고 하루아침에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서 원조를 가리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부대찌개의 유래가 50년대말 한국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주둔하면서 소시지와 햄이 지역으로 흘러나와 […]

돼지부속의 원조 파주

요즈음 구제역이 한창이라 소고기, 돼지고기 먹는다는고 마음 먹기가 쉬운일은 아니다. 그러나 80년대에는 회식이나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무공해 음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중 돼지부속은 한 시대의 뒷자락을 장식했던 음식이기도 하다. 그 당시의 기억을 찾아 정리해 보는것도 작은 역사의 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80년대 파주사람들이 즐겨 찾던 돼지부속집이라는 곳이 있었다. […]

시청에서 스마트폰 사용하기

보낸 사람 갤럭시S 중심으로 – 파주시 본청 및 읍면동 직원이 갖고 있는 스마트폰이 작년 11월말 현재 280여대로 공식파악되어 22% 정도가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개인적인 구입과 통신부서에서의 공동 구매를 통하여 현재는 4백여대 이상 보유한 것으로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은 컴퓨터가 처음 DOS라는 문자기반의 시스템에서 1990년말 windows […]

파주 경의선 이야기 2

파주역(坡州驛)은 월롱역에서 2.3km 북쪽인 파주읍 봉암리 516‐3번지에 위치하며 역무원이 없는 간이역으로 이용 승객은 이지역의 봉암리 주민 보다는 2~3km 떨어진 파주읍사무소 소재지 인근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다. 지금은 경의선 전철화 사업으로 추진되는 역사의 공사가 한창이며 이 역의 명칭도 봉암역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보낸 사람 경의선 파주역이 위치한 봉암1리는 ‘주라이’또는‘주라위’‘줄아위’라고도 불리는 마을로서 […]

파주 경의선 이야기 1

보낸 사람 경의선 경의선은 파주를 관통하는 철도로서 별 다른 교통수단이 없었던 그 시절에 신설된 역 중심으로 도로와 상가가 생기면서 파주 지역에 많은 변화를 일으키게 하였다. 최근 일제시대에 건립된 금촌역사가 전철복선화 공사를 하면서 역사를 고가철도로 이전하였다. 평상시 경의선의 파주 구간 역사자료를 정리하겠다고 미루다가 다른 역도 옛날 모습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질 것이라는 […]

은둔의 역사가 서린 감악산의 인물들

감악산에는 조선중기 의적이라고 불리던 임꺽정이 관군을 피해 숨어 있던 굴이 있어 임꺽정봉이라고 부르는 곳이 있다. 아마 임꺽정이 양주 출신이라 황해도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산이 깊고 쉽게 피할 수 가 있어 감악산으로 피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임꺽정 말고도 이 곳 감악산으로 숨으려는 사람이 역사에 또 등장한다. 그 중 고려시대 김부식의 아들인 김돈중과 조선 […]

자유의 다리, 그 진실을 알고 싶다

자유의 다리는 문산읍 마정리 임진각 광장 앞 망배단 뒤편에 놓인 길이 83m, 폭 4.5~7m, 높이 8m인 목재 다리로 1953년에 한국전쟁 포로 12,773명이 자유를 찾아 귀환하였기 때문에 명명된 다리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1952년 3월에 촬영된 가설교를 근거로 지금의 자유의 다리는 관광용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본래의 자유의 다리는 임진강을 횡단하는 목조 가설교로서 1953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