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대생의 고백-도전리에 가다

 어느 여대생의 고백-도전리에 가다   -송달용 전 파주시장 회고록 제53화- 1963년 3월 14일 여주군 2대 공보실장으로 부임했다. 공보실 직원은 정규직원(여) 한 명과 영사 기사 한 명 그리고 나까지 세 명이었다. 말이 공보실장이지 과(課)의 계장만도 못했다. 공보실장의 업무분장을 보면 주 업무가 군청의 시책 홍보이지만 인력과 장비가 턱없이 부족하고, 군정 홍보지를 만드는 것도 […]

공직자에게 감사패를 주는 것은 처음이다

공직자에게 감사패를 주는 것은 처음이다   -송달용 전 파주시장 회고록 제52화- 1986년 가을 일산천주교 사목회장이 찾아왔다. 일산성당 최신부님과 같이 저녁식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초대를 하였다. 이에 동의하고 최신부님을 식당에서 만났다. 부드럽고 모든 일에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어 대화에 부담이 없었다. 그 후 신부님의 신분이 아니라 인간적인 측면에서 신도들과 같이 여러 번 만나게 […]

사과를 받기까지 배냇병신의 이전투구

 -송달용 전 파주시장 회고록 제51화- 2010년 1월 16일, 행정동우회 지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1월 15일자 시청의 주간 업무보고에서 지방행정동우회원을‘배냇병신’이라고 하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니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냐는 내용이었다. 어떤 이야기를 하면서 배냇병신이라고 했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무어라 답변해 주기 어려웠다. 일단, 내용을 검토해 보고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했다. 다음 날이 되어 그 내용을 […]

버스 창문으로 목숨을 내던진 윤락여성들

버스 창문으로 목숨을 내던진 윤락여성들  -송달용 전 파주시장 회고록 제50화-   1979년 초가을 밤 11시경, 관사로 전화가 걸려왔다. 윤락 여성을 단속하고 돌아오는 길에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 마이크로버스가 속도를 줄이는 틈을 이용해서 창문으로 뛰어내리던 윤락 여성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단속공무원들도 같은 버스에 타고 있었지만 피곤하여 조는 바람에 뛰어내린 사실을 몰랐다. 운전기사 역시, […]

강화’ 덕분에 잘 노라씨다

‘강화’ 덕분에 잘 노라씨다 -송달용 전 파주시장 회고록 제49화- 1976년, 강화군 전적비(戰績碑) 정비사업이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의하여 추진되면서 나는 강화군 부군수로 가는 것이 확실시 되었으나 이 소식을 들은 강도희 신임 파주군수의 반대로 파주군에 재직해 있다가, 1978년 6월 13일, 결국 강화군 부군수로 발령이 났다. 이래저래 강화군과는 인연이 있는 것 같았다. 1978년, […]

갈등해소와 친목도모에 일조, 한미친선회의

갈등해소와 친목도모에 일조, 한미친선회의    -송달용 전 파주시장 회고록 제48화-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을 앞두고 서부전선의 지역을 남과 북이 누가 더 많이 차지하느냐를 두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우수한 화력을 가지고 있는 미 2사단과 7사단이 방어를 맡았으나, 그도 염려가 되어 한국군 해병대를 투입하여 현재의 상태가 유지된 것이다. 휴전협정과 더불어 미군부대 주둔은 주로 […]

잘못도 없는데 사과하라고?

잘못도 없는데 사과하라고?   -송달용 전 파주시장 회고록 제47화- 1972년, 유신헌법이 제정되고 국회는 해산되었고 1972년 11월 21일,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유신헌법의 당위성을 주민에게 설명하기 위하여 공무원은 물론, 사회단체장까지 총동원되었다. 낙자(樂字)와 용자(鏞字), 6촌 형님은 민선 읍·면장을 지내시고 농지개량 조합장을 하시어 지역에서 영향력이 있는 분이셨다. 그래서 파주군 공화당 부위원장으로 박명근 의원이 국회의원에 당선되는데 큰 […]

다 아는 비밀에 시치미는 왜 떼시나?

다 아는 비밀에 시치미는 왜 떼시나?   -송달용 전 파주시장 회고록 제47화- 1985년 7월 4일, 나는 가평군 청평호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나룻배 전복사고를 미리 방지하지 못했다는 책임을 지고 직위해제를 당했다가 1986년 3월 8일자로 고양군수로 복직되었다. 고양군은 근 80%가 그린벨트 지역이어서 주민의 생활불편에 따른 민원이 늘 끊이지 않았다. 거기에 나환자촌까지 있어서 상습적인 불법 […]

그래도 한때는 생활의 터전이었던 기지촌 -제46화-

그래도 한때는 생활의 터전이었던 기지촌   -송달용 전 파주시장 회고록 제46화-   용주골, 대추벌, 샘내, 곰시, 장파리, 선유리, 법원리 등 말만 들어도 미군이 주둔했던 기지촌의 추억이 담긴 부락들이다. 휴전협정이 내부적으로 추진되면서 서부전선의 평야지대와 서울의 근거리를 장악하기 위하여 북한은 산악지대인 동부전선을 거의 버리다 시피하고 서부전선에 총력을 기울여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면서 치열한 전투를 […]

신세를 졌으면 갚아야지 -제45화-

신세를 졌으면 갚아야지   -송달용 전 파주시장 회고록 제45화-   우리나라 안보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파주는 군사작전상의 이유로 파주 발전을 위한 새로운 사업을 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움이 많은 지역이다. 파주는 자유로와 통일로가 있고 제3땅굴과 도라산, 천연자원의 보고인 DMZ가 있으며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과 연계하여 초평도를 관광지로 개발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