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 한국의 모든 것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를 읽고

한국의 곳곳을 답사한 최초의 외국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 영국여성으로 작가겸 지리학자이다. 63세의 나이로 1894년부터 1897년 사이 4차례 조선을 방문하여 11개월간 조선과 조선인들이 이주한 시베리아까지 답사하며 조선의 자연과 생활상, 정치상황 등을 생생히 기록하였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의 낱낱의 생활상을 영국여성을 통해 들어야 하는 부끄럼. 불과 100년전인 우리의 삶을 너무 몰랐다는 충격이 크다. 역자 이인화는 이 책을 1994년에 처음으로 번역하며 “이 명저가 아직도 번역되지 않은 이유는 영어를 몰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한국을 몰라서였다”고 토로하며, 7장에 나오는 ‘벽절’이란 절이 신륵사의 다른 이름이란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고백한다.

보낸 사람 파주문학동네

1894년4월 시작으로 나룻배로 서울 한강에서 청풍 단양 영춘까지 남한강을 따라 여행, 거슬러 올라 가평 춘천 등 북한강으로의 여행 , 육로를 통해 금강산, 동북부지역, 만주, 시베리아 등 여행, 1895년 11월 다시 고양 파주를 거쳐 개성, 평양, 덕천, 무진대, 순천 등의 길고 긴 여정을 통해 한국의 빼어난 자연경관과 동식물을 관찰하였고 또한 백성들의 비참한 생활을 경험한다.
그녀는 조선의 양반과 관리들을 민중의 피를 빠는 면허받은 흡혈귀, 한국사회의 기생충이라 표현하며 그들의 백성수탈, 사치, 탐욕, 불손에 대해 혐오감을 드러냈고 백성들의 가난과 선하지만 무기력한 삶을 낱낱이 기록했다. 그러나 척박한 시베리아에 정착한 한국인들의 성공적 안착과 상권 장악에 놀라며, 지배계층의 착취만 없으면 무서운 자발성을 발휘하는 민족임을 강조한다.
구한말의 정치적 분쟁과 알려지지 않은 정치상황,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 명성황후시해 등을 그녀의 시각에서 자세히 기록하였다. 한국인들의 정서와 문화, 생활모습의 기록은 한국인보다 더 분석적이었으며, 영국여성 입장에서 본 한국여성의 노동과 격리된 삶, 한국식 빨래, 여성의 결혼생활 등은 새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 밖에도 한국의 무속신앙, 귀신들의 계보, 교육, 기생에 대한 글은 매우 재미있게 본 부분이다.
비숍의 여로는 결코 순탄치 않았다. 서양여인에 대한 지나친 거부감과 대책없이 버릇없는 한국여성들의 호기심, 과도하게 뜨거운 온돌 등의 경험하지 못한 조선식 생활, 더러운 여관, 소음, 각종 벌레, 불손한 관리들, 찾기 힘든 통역자와 하인 등은 이 책에서 표현한 것보다 더 힘들었으리라. 그럼에도 60이 넘은 나이의 비솝여사는 관심과 열정으로 한반도 구석구석을 찾아 다닌다. 그녀의 고백은 진지하고 솔직하게 느껴졌고 나름 객관적이었다고 본다.

이 글을 읽는 동안 많은 감정이 교차되었다. 부끄럽고, 화가 나고, 아프고, 안타깝고… 잊고 싶은 과거 구한말시대. 그러나 외면하려 하지 말고 좀 더 객관적으로 우리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과거는 현재로 이어지고 현재는 다시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기에…
또한 그녀가 그토록 감탄했던 한국의 자연경관. 우리는 지금 잘 지키고 있는지, 너무 훼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아야 할 것이며, 행정관리들의 백성 착취는 과거로 끝난 것인지, 지금도 계속 되고 있는건 아닌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기억나는 글>
● 서울에서 흥미로운 제도: 저녁 8시경이 되면 대종이 울리는데 이것은 남자들에게 귀가할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이며 여자들에게는 외출하여 산책을 즐기며 친지들을 방문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 자정이 되면 다시 종이 울리는데 이때면 부인은 집으로 돌아가야 하고 남자들은 다시 외출하는 자유를 갖게 된다.
● 한국인은 결혼하기 전까지 하잘 것 없는 존재. 결혼하지 않은 남자는 고려될 여지가 없는 존재 즉 떠꺼머리 총각(hobbledehoy)에 불과. 결혼하면 하잘 것 없는 존재(nobody)에서 한 몫을 하는 존재(somebody)로 바뀌는 것
● 한국식 빨래의 복잡한 공정: 잿물에 빨래감 불리기→빨래감 두드려 빨기→펄펄끊는 물에 푹 삶기→다시 빨래감 두드려 빨기→물에 헹구고 말리기→마른후 밥풀로 풀 먹이기→다듬이질하기→ 다시 바느질하기. 한국여성은 빨래의 노예.
● 한국인에게 집은 있으나 가정은 없다. 남자는 아내와 결혼하고 첩과 사랑을 나눈다
● 동학군은 너무나 확고하고 이성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어서 나는 그들의 지도자들을 반란자들이라기보다 차라리 무장한 개혁자들이라고 부르고 싶다.
● 무척 치안이 안정된 나라여서 보호를 받을 필요도 없었기에, 나는 마부도 없이 오리 골까지 갔다. 외국의 연약한 여인이 혼자 커다란 도시의 중심부에 위치한 작은 골목에 붙어 있는 거처에서 수행원도 없이 영어는 단 한마디로 모르지만 내 돈이 어디에 있는지는 훤히 알기 때문에 마음만 먹는다면 내 목을 찌르고 돈을 털어 갈 수도 있는 병사와 함께, 대문도 잠기지 않고 자물쇠도 없는 방에서 아무런 불안감 없이 네 활개를 뻗고 누워 있는 것이다.
● 한국에서는 만약 어떤 마을이 나그네를 재워줄 수 없을 때는 반드시 다른 휴식처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국법으로 정해놓고 있었다. 아마 당시 유럽 어느 나라에서도 이처럼 고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없었을 것이다

윤현아(적성)
파주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