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심가득 – ‘양요당’을 찾아서(1)

–  김  대  년 –

공직 퇴임 후 그림에세이 ‘사심가득’을 시작하면서 틈날 때 마다 ‘파주순례’를 하고 있습니다. 태어나고 자란 파주이지만 그동안 공무에 바빠 너무 내 고향을 모르고 지냈다는 아쉬움이 컸고, 역사가 깊은 땅이기에 고품격 컨텐츠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자주 ‘파주순례’를 나서는 이유이지요.

그 과정에서 소중한 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바로 향토사학자 정헌호 님입니다. 파주에서 ‘임진강 부부화가’로 활동하고 계신 김시하 화백님 부부와 함께 임진8경, 장산전망대 등을 다니며 많은 역사적 사실과 파주의 빛나는 정신·가치에 대해 듣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특히 제 관심을 끈 것은 18세기 조선시대 후기에 있었던 생소한 이야기입니다. 바로 파주 탄현면 통일전망대 오두산 인근의 ‘양요당8경(兩樂堂八景)’이지요.

1700년대 초반에 오시익이라는 교하현감이 있었는데 한록산 자락의 경치 좋은 곳에 ‘능허대’를 마련하였고, 그 아들 오상붕이 60년이 지나 낡은 ‘능허대’를 허물고 집을 지어 ‘양요당(兩樂堂)’이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조선시대 어느 부자(父子)가 대(代)를 이어 자연경관을 사랑한 이야기입니다. 조선 후기 대표 실학자인 성호 이익 선생이 그 절경에 반해 ‘양요당8경’이라는 詩를 남겼지요.

그러나 어느 산이 한록산인지, 어디에 양요당이 있었는지 후대에 알려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양요당 스토리에 매료된 저는 양요당의 흔적을 찾아 주변 산을 자주 올랐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감격의 순간을 맞이했지요. 양요당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터를 찾아낸 것입니다.

그림은 현재의 모습입니다. 맨 앞산이 한록산이고, 바로 앞의 건물이 통일전망대, 그 너머 강이 한강이며, 바로 임진강과 합쳐집니다. 앞으로 ‘사심가득’을 통해 양요당 터의 발견과정과 성호 이익 선생이 읊은 ‘양요당8경’을 저의 시각과 느낌으로 한편 한편 그려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정헌호 님을 비롯한 우리 일행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양요당’이 복원됨으로써, 많은 분들이 절경 중의 절경인 ‘양요당8경’을 함께 즐기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