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심가득 – 삼남매

  – 김  대  년 –

저는 외아들이고, 위로 누님이 두분 계십니다. 우리 삼남매는 파주시 문산읍 내포2리 오목동에서 태어나 자랐지요. 큰누님은 착하디 착한 성품에 알뜰살뜰 살림꾼으로 평생을 사셨고, 작은누님은 미술, 옷 양장(洋裝), 미용 등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계셔 항상 바쁜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저도 퇴직을 한 연령이 되다 보니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누님들은 어느덧 칠순을 훌쩍 넘기셨지요. 세월의 흔적과 함께 찾아오는 병마는 누님들이라고 비켜가지 않았습니다. 특히 큰누님이 많이 편찮으십니다. 사는게 뭔지 병문안도 자주 못가 항상 죄스러운 마음을 한켠에 쌓고 살다, 삼남매가 오랜만에 모였습니다.

그 사이 더 쇠약해진 큰누님 모습에 가슴이 시리게 아파옵니다. 그래도 큰누님은 삼남매가 함께하는 병원 앞 외출에 금방 얼굴이 밝아져 왔습니다. 함께 식사도 하고, 작은누님 제안으로 미장원에 들러 뽀글파마도 해 드렸죠. 워낙 예뻤던 큰누님 얼굴이라 머리단장, 얼굴단장을 하고 나니 언제 아팠던가 싶게 화색이 돌았습니다. 핸드폰으로 큰누님 영정사진도 찍어드리고, 삼남매도 함께 사진촬영을 했습니다. 어느 영정사진 전문작가는 영정사진을 찍는 분들이 ‘입은 웃어도 눈은 울고 있다’고 말했더군요. 하지만 우리 큰누님은 진짜 환한 웃음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우리 삼남매 모두가 이렇게 한 세상에서 숨을 쉬며 살아갈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요. 이 소중한 시간들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제가 더 부지런해져야 하겠습니다. 나라에 바친 몸이었기에 그동안 가족도 잘 돌보지 못했습니다. 친척과 친구도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지나가는 계절의 아름다움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인간의 참모습을 되찾아가기 위해 더 겸허해지고, 더 따뜻해지고, 더 유연해지고, 더 관대해져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자유로 너머의 노을이 참 아름답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제 나이를 건너가셨을 당시의 부모님은 어떤 생각을, 어떤 고민을, 어떤 내일을 마음에 담고 계셨을까…… 문득 오래전 돌아가신 부모님이 많이 보고 싶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