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를 만났다 – 인 송

오래 된 노트에서 꺼내 온 추억이 현실로 환생되는 과정을 예리하게 펼친 한 편의 소설이다. 누구나 오래 된 노트를 갖고 있다가 추억을 정리하지만  그녀의 노트에는 아직 생생하게 남아 있다. 이 소설의 작가는 파주 출신으로 그 동안 여러가지 단편소설과 꽁트를 발표하였다. 작품 모두가 그녀의 노트에서 걸어 나와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 편 집 자 –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부른다.   사장님. 아줌마. 이모. 누군가는  언니라고. 이제는 그렇게 불리는 것이 낯설지 않다. 나는 지금 지방의 작은 도시 변두리에서 음식점을 하고있다. 이 일을 시작하고  강산이 한 번 변했다,  나 또한 변했다.

어느날  점심 시간이 지날 무렵 몇명의 남자  손님들이 들어왔다. 그중 한 남자가 내 옆을 지나가면서  “인숙씨, 안녕!” , “‘안녕” 이었는지 “안녕하세요”였는 지는 정확하지 않았다.  내 귀에 남은 말은 “인숙씨”였다. 누구세요? 나를 아세요? 라고 난  바로 물었다.

그는 민망한듯 일행을 따라 자리에 앉았다  그때부터 난 많은 생각을 했다 누구지? 나를 어떻게 알지?   자연스럽게 내이름을 부른다는건 내가 이곳에 있다는걸 아는 사람이고  적어도 한 두번은 나를 봤다는 건데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때 내 귀에 들어온 단어 하나  누군가 그를 향해 부른 ‘목사님 ‘  내가 아는 목사가 있었던가 아는 목사는  친구 남편 한 사람 뿐이다. 그는 아니다 나는  끊임없이 생각했다. 그가 나갈때까지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그에 대한 예의다.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음식이 나오고 그들 테이블에  그것들을 놓으면서 난 그의 옆 얼굴을 봤다.  그다 ! 그남자다 세월의 흔적 속에서도 묻히지 않은 오똑한 콧날  많은 생각을 담고 있는 듯한 얼굴 표정 그리고 목사님.

그때부터 내 머리는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어떻하지 ‘, ‘아는 척을 해야하나’ , ‘ 끝까지 모른척 해야하나’  끊임없이 갈등했다.

식사가 끝나고 계산이 끝나고 그리고 그들이 나갈때까지 난 그를 외면했다.  그 또한 아무말 없이 일행을 따라 나갔다. 그는 우리 식당에 몇번이나 왔었을까,  나를 언제 알아 봤을까, 등등 . 많은 생각들로 심란하고 복잡했다.

그는 그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듯하다. 시골 마을의 작은교회  목사로 사는것이 그의 꿈이었다. 그날 저녁 집에 온 나는 아주 오래된  노트 한권을 꺼냈다. 시골로 내려올때 이십년 넘게 썼던 일기장들을 정리하면서도  버리지 않았던 그노트는 내가 알았던 사람들 그들과의 인연에 대한 기록이다. 그와의  이야기는 “그 남자를 만났다” 라는 제목으로 노트 앞 부분에 있었다.

 ‘-‘ 그 남자를 만났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기가 꿈꾸어 오던 이상형의 상대를 만나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또 어느날 우연히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그날도 나는 퇴근과 동시에 역으로 뛰었다 . 회사에서 역까지의  거리는 십분 정도 이십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기 위해 매일 저녁 뛰었다.

그 기차를 놓치면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차는 벌써 떠나고 없다. 역 안의 시계는 30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회사 동료중  누군가 또 장난을 친것이다. 그들은 나를 놀리기 위해 가끔 시계를 느리게 돌려 놓고는 했다 .

TV 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누군가 나를 불렀다. 동창생  친하지는 않았지만 반가웠다. 심심했기 때문에…  그녀와 시간을 보내다가 한시간 늦게 기차를 탔다. 종점에서 두 정거장이나 지난 역이기 때문에 언제나 서서 퇴근을 했다.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을 찾았다. 학교 때의 일,  동창생들, 회사 얘기등, 정신없이 수다를 떨고 있을 때 기차가 흔들렸고 비틀거리던 나는 어떤 사람의 발을 밟았다.  우리가 서 있던 앞자리에 앉아 있는 그의 발을 밟은 것이다. “죄송합니다 ” 하면서 그를 봤을 때 그는 빙긋이 웃었다.  

아!  선이 강한 이목구비 이지적인 분위기 새것은 아니지만 그에게 너무도 잘 어울리는 검은 바바리 코트 그리고 붕대로 감싸고 있는 팔,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무엇인가를 고뇌하고 있는 듯한 그표정, 그윽한 눈빛, 순간 난  소설 속의 한 남자가 떠올랐다 개선문의 주인공 “라비크” 어쩌면 그가 꼭 저 사람과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와 끊임없이 떠들어 대던 것이 갑자기 창피해졌다. 그때부터 입을 다물고 그녀의 얘기만 들었다.  그에게 자꾸 신경이 쓰인다. 첫눈에 반한건가? 나는 내릴 때가 다와 가는데 그는 어디까지 가는걸까   궁금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친구 차나 한 잔 하자며 나를 끌고 내린다.

내가 내려야 하는 곳 보다 한 정거장 빨리,   아쉬움과 함께 허무한 생각까지 든다 . 차를 같이 마실 정도로 친하지는 않은데  모든게 귀찮다. 차는 다음에 마시자면서 그녀와 헤어졌다. 기차 역 가까이에 버스 종점이 있기에 나는 가끔 그곳에서 내리고는 한다 .  

버스를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때  한 남자가 탔다. 내 눈을 의심했다.  기차에서 언제 내렸지? 나를 더욱 놀라게  한건 그가 웃으며 내 옆자리에 앉으면서 ” 또 만났네요 ” 하는 것이였다.  얼굴이 빨개진 것 같다. 가슴까지 두근 거렸다 특이한 사람이다. 마치 오래 전에 알고 있던 사람 대하듯 한다.  

서울에 일이 있어 다녀 오는 길이고  회사가 이 지역으로 옮겨와서 가족이 모두 이사를 왔다고 했다. 그래서 인지 아직 이 고장이 낯설다고. 그러면서 내 목소리가 곱다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목소리가 예쁘다라고 하는데  그는 곱다 라는 표현을 쓴다. 정감있는 말투였다 괜찮다면 자기와 같이 내려 저녁을 먹자고 했다.

‘어떤 멍청이가 처음 만난 남자가 저녁을 먹자고  따라 간단 말인가?’.  나는 정말 멍청이가 되고 싶었다. ”네” 와 ”아니오”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 하면서, 하지만 내 입에서는” 다음에요 “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내일도 회사 일로 서울에 가는데 자리를 맡아 놓겠다고 한다  왜 내 입에서는 매 번 쓸데없는 말이 튀어나오는 걸까. “내일은 기차 안타는데요 약속이 있어서”  버스는 너무도 빨리 그가 내릴 곳 까지 왔고 그는 이말 만을 남긴 채 버스에서 내렸다.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겠지요’ 라고….. 그 때 그사람과의 만남은 아쉬움으로 내 기억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

회사를 옮기고 2년쯤 지났을 때 그들을 만났다.  같은 시간 같은 기차를 타고 퇴근을 하면서 알게된 사람들이다.  매일 그렇게 만나다 보니 조그마한 모임도 만들어지게 되고. 가끔 모여  저녁도 먹고 술도 한잔하고, 직업과 연령대는달랐지만 친하게 지내다 보니 퇴근하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어느 날 그들 중 한 사람에게 동행이 있었고  내게 그를 소개 시켰다. 자기의 친형이라고 그는 말없이 인사를 하고 내 옆자리에  앉았다. 우리 모두와의 낯설음 때문인지 1시간 내내 책을 보고 있었다. 그것도 성경 책을 참으로 희안한 사람 같았다.  

얼마 쯤 지났을 때 무심코 그의  옆 모습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옛날  어떤 남자의 얼굴이 겹쳐지는 것이였다. 혹시나 하면서 자꾸 쳐다 봤지만  긴가 민가했다. 옛날의 그 남잔가? 아니겠지. 다음 날 친구를 만나 일찍 기차를 탔다. 역 밖으로 나오는 나의 어께를  누군가 친다 돌아다 보니 그였다.

어제와는 다른 모습의 그 남자.  어제는 말쑥한 양복 차림이었는데 오늘은 가죽 잠바에 청바지다.  멋있다! 저 남자는 뭘 입어도 잘 어울리는구나 라고 혼자 생각했다. 어제 처음 봤는데  아는 사람처럼…. 어떤 한 장면이 떠오른다. 어제는 말 한마디 안하더니 친구와 내가 저녁을 먹을거라고 했더니 같이  가도 되냐고 묻는다.

머뭇거리는 나를 제치고 친구가 승낙을 해버린다.   친구는 잘 생긴 남자를 아주 좋아한다.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러 간 우리는 자연스럽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나이가 많은 신학 대학생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혹시 몇 년 전에 손 다친적 없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놀라서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는다. 그 남자다!  ”동생한테 들었던것 같에요 ” 라면서 얼버무렸다. 그는 그 때 동생은 군대에 있어서  자기가 다쳤던 것을 몰랐을거라면서 의아해했다. 그러면서 자기의 손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의  손가락 두개가 없었다.

그는 그 때의 일을 이야기했다.  기독교 집안의 장남인 그를 목회자로  만들고 싶어하시는 어머니의 뜻을 거역하고 자기의 뜻대로 다른 길로  갔고 그가 사고를 당하자 그에게 또 다시 강력하게 그것을 권유 하셨다고 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서. 그 당시 그것 때문에 고민을 했고 손가락을 잃은 후   어머니의 말씀 대로 신학 대학을 다니게 된거라는 우리가 듣기에는 좀 황당하고 어이없는 얘기지만 그의 진지함에 친구와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옛날의 그 일을 덮기로했다 . 물론 친구에게도 그가 옛날의 그남자 였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도 우리와 같은 일행이 되가고 있었지만 자주 만나는  일은 많지 않았다.

회사일이 바쁠때는 그 시간 기차를  타지 못 할 때가 많았다. 어쩌다 둘만 만나는 날도 있었지만 특별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는 친절했고 그 친절은  선을 넘지 않았다. 그렇게 몇달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

어느 토요일 많은 눈이 내렸다. 갑자기 내린 눈 때문에 서울 시내의 모든 교통이 마비됐다. 토요일 특별한 일이 없으면 난 3시 기차를 탄다. 그날은 기차 타기를 포기하고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버스가 다니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왜 였을까 그 기차를 타야 될것 같았다. 그러고 싶었다.

차도 다니지 않는 눈길을 걸어서 서울역까지 왔다.  습관처럼 항상 타던 칸으로 갔다. 사람은 많치 않았지만  자리는없었다. 누군가 나를 부른다 그였다. 토요일은 수업이 없는걸로 알고있는데  그는 눈 구경을 하려고 기차를 탔고 서울역까지 왔다고 했다. 아는 사람이 올것 같아 자리를 맡아 놓았다고 했다.

그와 둘이 있는것이 어색해졌다 .  그는 내게 남자 친구가 있냐고 물었고 어떤 스타일의 남자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여자 친구는 없으며 나 같은 여자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내 입에서는 또 엉뚱한 말이 튀어 나왔다. “나랑 비슷한 친구 있는데 소개시켜 드릴까요” 라고 말했다.

그는 말했다 .  인숙씨 보다 더 닮은 인숙씨 같은 여자는 없다고  그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그날 그와 그렇게  사적인 대화를 나누고 전화번호를 주고 받았고 그때 그의 이름도 알게 되었다.  눈길에 미끄러져 넘어지고 자연스럽게 팔을 잡게되고 눈 때문에 오지않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많은 얘기를 한것같다.

어색함이 사라지고  경계심이 풀리고 이 모든게 눈탓이라고 그렇게  결론 내렸다. 이 삼일에 한번 둘이서만 그들과  있을때면 평상시 처럼. 그 만남은 항상 기차 안에서 이루어졌다. 가끔 나의 친구나 그의 친구들과 동행 일때도있었다 . 그가  가끔 우리 회사 앞으로 올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기차를 함께 타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옛날 그가 왜 나에게 자연스레 말을 걸었는가를  그는 모든 사람을 허물없이 대하는 그런 장점을 가지고 있는사람이었다.

그는 교회 주일학교 교사이며 교회에서 하는 일이 많다고 했다.  만남의 횟수가 많아지고 서로 부담없는 얘기를 할수 있게 되었을때 그는 내게 말했다. 그동안 나와 같은 기차를 타느라고   주중에 있는 예배에 참석하지 못해 죄의식을 느낀다며 학교를 졸업하면 오지 마을의 개척 교회나 해외에서 전도하는 일을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와 결혼하게 될 여자는 그런 모든것을 이해해 주는 여자였음 좋겠다고  처음으로 내게 교회에 다녀보고 싶은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내가 교회에 다녔으면 참  좋을것 같다고 대답은 안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기로했다. 그가 원한다면 그의 하나님을 만나보기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력했다 하지만 적응이 되지 않았다.

쉬는 일요일 아침부터 일어나 준비하는것도 힘들고  무엇보다 그곳의 분위기가 낯설었다. 내가 교회 다니기를 그만 뒀을때도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도 종교 얘기로 시작된 우리의 대화는 정말로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으로 시작해 급기야 십자군 전쟁  기독교라는 이름하에 행해졌던 잔혹상들을 내가 조목조목 따져 가면서 그의 기분을 상하게했고 우리는 말없이 헤어졌다.

믿음은 그가 강했지만 독서량은 내가 많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와의 관계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의  말처럼 그는 하나님의 자식이다. 더 나아가기 전에 이 관계를 정리 해야 한다.  무언가를 위해 내 자신을 포기하기에 나는 너무 이기적이였다. 기차로의 출 퇴근을 포기하고  그 모임의 모든 사람을 포기했다.

30분이 더 걸리는 버스로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회사로 걸려오는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고  그의 동생과 몇번 통화를 했었고 마지막으로 만나기로 한 장소에 나가지 않으므로 그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일년이  지날쯤 버스 안에서 우연히 그의 후배를 만났을때   그가 학교 근처로 이사 했다는 말과 같은 신학 대학에서 만난 여자하고 연애중이라고했다.   그는 자기가 바라던 여자를 만난것 같다. 그는 아마 훌륭한 목사님이 될것이다.

몇년후   왜 기차를 탔는지 알수 없지만 역 밖으로 나오다   내 뒤에서 도란거리는 남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의 목소리 같았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버스를 탔을때 누가 나에게 ” 내가 옛날에 알던 사람 같은데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를  쳐다 봤고 “네” 라고 대답했다. 그의 옆에는 나보다 예쁘고 어려 보이는 여자가 서 있었다 . 엄마 집에 가는 길이라고 했고 나는 또  “네”라고 했다. 내게 결혼 했냐고 물었을때 그냥 웃었다. 그는 버스에서 내릴때까지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그가 내리고 나서  뭔지 모를 섭섭함이 밀려왔다  그건 그가 내게 너무 정중한 존대말을 썼다는것과  알수없는 낯설음이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와의 만남은  길지 않았지만 만남을 시작 할때 까지의 설레임과 두근거림 어떤 기대감 손끝이나 어깨를 스쳤을때의 짜릿함, 이러한 것들은 잊을수 없을것 같다.  곧 겨울이 올것이다 .

그와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었다.

너무 많은 세월이 흘렀고  그를 알아보지도 못했고 그의 이름조차 가물거리고 남아있는건 낡은 노트 한 권 뿐이였다.  언젠가 친구가 한말이 떠오른다 아이들 학원비라도 보태려고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있을때 가족과 함께 온  옛날 남자친구와 마주쳤는데 자기도 모르게 도망쳤다는, 이유없이 비참한 생각이 들었다고했다 그날 저녁 남편한테 엄청 짜증을 냈다는 그녀의 얘기를 들으면서 그때 난 생각했었다  만일 나에게도 그런 일이 생긴다면 좀 더 좋은 장소 좋은 모습의 나였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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