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다리 기록사진들

‘자유의 다리’ 는 1905년 용산-개성간 철도를 부설하면서 단선 철교(701m)로 준공되었고 1938년 경의선 복선공사를 시작 하여 임진강을 횡단하는 철교가 상하행선  2개가 되었다.

그후 한국전쟁시 1950년 10월 중국군의 개입으로 연합군이 다급하게 후퇴를 하면서 1950년 12월 31일 22:00경에 미군이 장단역에 정차된 기관차를 총격으로 거부하고 후퇴하였으며 철교도 이 당시에 폭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자유의 다리는 군수물자 수송과 포로교환이 필요하자 미군 당국과 남한의 교통부가  합동으로 1952년 3월 1일부터 임진강 철교를 복구하기 시작해 같은해 6월25일까지 117일간의 공사로 복구를 완료하였다.

자유의 다리는  북한에 수용되었던 포로 12,733명이 1953년 8월3일부터 9월6일까지 33일 동안 판문점에서 트럭을 타고 임진강 철교 북단에 하차하여 자유 남한으로 걸어서 귀환하였다고 해서 불려졌다.

그러나 1905년에 세워진 임진강 철교와 폭파된 상류철교  남단과  연결하기 위해 목재로 가설된 교량 전체(784m)를  ‘자유의 다리’ 라고 부르는 것과  하류의 철교와 남단과 연결된 83미터 구간만 ‘자유의 다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임진강 철교와는 별도로 임진강을 건너는 목재 교량을 ‘독개다리’라고 불렀다고 하며 아래 자료  첫번째 사진에서 인도교량이 보인다.

 

1952년 자유의 다리/ 여름철 홍수와 동절기 얼음으로 임시 인도교량이 파손되었다 / PFC Dave Miles (JSF 판문점 근무) 제공
파괴된 2개의 경간 사이에 임시저층 교량이 가설되었다.(1952년 촬영) PFC Dave Miles (JSF 판문점 근무) 제공

 

1953년 임시교량
1953년 겨울(?) 임시교량
남쪽에서본 자유의 다리에서 북쪽 방면1
남쪽에서본 자유의 다리에서 북쪽 방면2
남쪽에서본 자유의 다리에서 북쪽 방면3

 

자유의 다리의 미군 행군(년도 미상)

 

자유의 다리 (1955)/ 제1임시경비부대 / MSgt Robert D. Caulkins 제공

 

북에서 남쪽으로 본 자유의 다리 / 1958,

 

1959년 북에서 본 자유의 다리/ 상류 부분의 파괴된 철로가 남아 있다
자유의 다리 북단에서 공사중인 사진 / 1967

 

자유의 다리 남단에서 탱크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현재 목재교량 부근으로 추정된다/ Ken Lane (JSA) 제공
1967~1968자유의 다리앞
상하행 철교 사이에서 북쪽을 바라본 전경/ 캔라인 제공
1969년 자유의 다리

 

1973~1974 북에서 남으로 본 자유의 다리

 

북에서 본 자유의 다리 (1970년대 추정)

 

1970년대 임진각 앞 공사중

2006년 임진각에서 본 자유의 다리

 

 

이 자료의 사진 대부분은 미육군 제 2 보병 사단에서 복무했던 참전 군인이나 전후에 근무했던 제대 군인이 운영하는 사이트를 이용하였으며 본 내용과 관련된 사진자료나 의견이 있으시면 파주이야기 편집자에게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미육군제2보병사단 제대군인 홈페이지 :  2ida.org/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