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적성’ 지명 오류 알림

 

지난 8월  “적성(積城) 이라는 지명이 1018년( 고려 현종 9년)에 처음 만들어져 내년 2018년 2월이면 1천년이 된다.”라고 ‘색다른 파주이야기 제23화’의 주제로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관련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확인해 본 결과,  ‘적성현’이란 지명이 1018년 이전 고려 초기(고려개국 918년)에 이미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고려시대의  대표적 정사로 알려진  <<고려사>> 에는 ‘적성현(積城縣)은 신라 경덕왕이 중성현으로 불렀던 것을 고려초에 적성현으로 고쳤고 현종9년  행정구역 개편시 이전 명칭을 그대로  장단현에 소속 시켰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사>> 권56, 지10, 지리1)

따라서  ‘적성(積城)‘이라는 지명이 역사 문헌에 처음 등장한  현종9년(1018)을  ‘천년적성’이라고 발표한 견해를 바로 잡습니다.

-파주이야기 편집자  이기상 –

천년적성을 맞으며 (2017. 8.1 발표) 보기

관련자료

<고려사  권56, 지10 , 지리1, 왕경 개성부  적성현)>

積城縣本高句麗七重城, 新羅景德王, 改名重城, 爲來蘇郡領縣. 高麗初, 更今名. 顯宗九年, 爲長湍縣屬縣. 文宗十六年, 來屬. 睿宗元年, 置監務. 有紺嶽【自新羅, 爲小祀. 山上有祠宇, 春秋降香祝, 行祭. 顯宗二年, 以丹兵至長湍, 嶽神祠, 若有旌旂士馬, 丹兵懼而不敢前, 命修報祀. 諺傳, 羅人祀唐將薛仁貴, 爲山神云.】

“적성현(積城縣)은 원래 고구려의 칠중 성(七重城)인데 신라 경덕왕은 중성현(重城)으로 고치고 내소군(來蘇郡)의 관할하에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초에 지금 명칭으로 다시 고쳤고 현종 9년(1018)에 장단현의 소속현으로 되었다가 문종 16년(1062)에 본부[왕경 개성부]에 소속시켰으며 예종 원년(1106)에 감무를 두었다.”

 

<‘경기제의 시초’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 신안식 著>

919년(태조 2) 태조 왕건송악(松嶽)에 도읍을 정하면서 이곳을 개주(開州)로 삼았는데, 개주는 수도의 통치영역을 아울러 지칭한 것으로 수도와 그 주변지역을 합쳐 만든 왕기(王畿)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960년(광종 11)에 개경을 고쳐 황도(皇都)라고 하였다. 이는 곧 황제국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에 따르는 도성의 정비가 요구되었을 것이다. 987년(성종 6)에 태조대의 개경 5부방리제(五部坊里制)를 재정비하고, 995년(성종 14)에 개주를 고쳐 개성부(開城府)라 하고 적현 6개와 기현(畿縣) 7개를 관할하게 했던 것도 그러한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이때의 적·기현제는 나라 제도를 모방한 것이었으며, 도성에 근접한 지역을 적현으로 그 방읍(防邑)을 기현이라고 하였다.

수도 개경의 기보 지역을 정식으로 ‘경기’라고 한 것은 1018년(현종 9)의 일이었고, 이는 성종 14년에 시행하였던 적·기현제를 개편한 것이다. 즉 지금까지의 개성부를 없애고 개성현령(開城縣令)을 두어 정주(貞州)·덕수(德水)·강음(江陰) 등 3현을 관할하게 하고, 또 장단현령(長湍縣令)을 설치하여 송림(松林)·임진(臨津)·토산(兎山)·임강(臨江)·적성(積城)·파평(波平)·마전(麻田) 등 7현을 관할하게 하여 모두 상서도성(尙書都省)에 직속시켰는데, 이를 ‘경기’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보면 경기제의 시초는 성종 14년의 일로서 태조 2년에 설치된 개주를 개편하여 개성부를 설치한 때부터였다고 할 수 있다. 성종대의 적·기현 13현이 구체적으로 어디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현종 9년의 경기 12현과 같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9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