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 지명 천년을 맞으며

필자의 ‘적성지명 천년을 맞으며’는 적성전통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작성했으나 ‘적성(積城)’ 지명은 사실상 고려초부터 사용되었기 오류가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2017.10.26   파주이야기 편집자  이기상 –

<글·사진 : 이기상>

  적성(積城) 이라는 지명이 1018년 고려 현종 9년에 처음 만들어져 내년 2018년이면 1천년이 된다. 지명은 옛날부터 지방통치를 원활하기 위해 시대에 따라 통폐합되고 새로운 지명을 만들어 사용하기 때문에 원래의 고유지명을 오랫동안 갖고 있기는 쉽지 않다.

교하(交河)의 경우에는 삼국시대 백제에서  ‘천정구(泉井口)’로 불렸다가 고구려시대에는  ‘천정구현’이 되었다. 그후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757년(경덕왕 16) 대대적인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천정구현’을 ‘교하군’ 으로 변경하여 파주에서는 ‘장단’과 함께 가장 오래된 지명이 되었다.

양주(楊州)라는 지명은 후삼국 시대에 최초로 사용되다가 매성(買城), 마홀(馬忽)),  내소군(來蘇郡)로 불렸다가 1395년 견주(見州)에서 다시 양주로 지명을 개칭하여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고양(高陽)은 1413년 3월 23일(태종13년) 고봉현과 덕양현을 통합하면서 고양이라는 지명이 처음 만들어졌다.

서울은 수도라는 뜻으로 신라 때의 서야벌, 서벌이 변하여 서울이 되었다고 하며 그 후 남경, 한양, 한성부, 경성부로 불리다가 1946년10월 1일 서울로 되었다. 지형이 가마솥 같다는 부산은 1402년  부산(富山)에서 부산(釜山)으로 개칭되었다.

적성은 백제에서 난은별(難隱別), 고구려에서는 낭벽성(娘臂城) 또는 칠중성(七重城)이라 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 칠중현을 중성현으로 개칭하였다가 고려 현종 9년 2월(음력)에 전국을 4도호・8목・56지주군사・28진장・20현령을 설치(고려사절요 3권)하면서 적성이라는 지명이 만들어졌다.

당시 이 지역은 장단(長湍)현령으로 송림(松林)ㆍ임진(臨津)ㆍ토산(兎山)ㆍ임강(臨江)ㆍ적성(積城)ㆍ파평(坡平)ㆍ마전(麻田)의 7현을 관할하면서 중앙기관인 상서도성에 소속되었으며 이곳을 고려의 수도인 개성 중심의 경기(京畿)라고 불렀다.

적성지역은 예로부터 군사요충지로 평양, 개성에서 서울로 가는 가장 빠른 길로서 임진강을 건너 설마리 협곡을 지나야했다.  칠중성은 낮은 야산에 위치하였지만 임진강 북쪽의 모든 지역을 감시할 수 있어  군사를 가장  빨리 출동할 수 있는 곳이었다. ‘칠중성’은 전투가 치열하였던 곳으로 삼국사기에  ‘칠중성’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한다고 알려져 있다.

칠중성 위치도(사진: 한국콘텐츠진흥원)
구읍리에서 본 중성산(사진:PHOSTO)

삼국사기에 칠중현을 나난별, 난은별로 불렀고, 옛날부터 임진강을 ‘대수’, ‘칠중하’, ‘호로하’로 불렀다고 한다. ‘나나’는 ‘일곱’을 뜻하는 고구려 용어라고 한다. 적성이라는 명칭도 칠중성이 일곱겹으로 쌓은 성 또는 일곱 개의 작은 성이라는 의미처럼 성을 겹겹으로 쌓았다는 뜻으로 지어졌다고 보인다.

‘고려사 절요’에서 현종 9년(1018년) 2월에  적성이라고 행정구역을 개편하였지만 날자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다만, 당시 2월에는 11가지 기록이 있으나 이 중 2번째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2월초가 되었을 것이라고 판단해보았다.

당시  2월 초를 양력으로 환산하기 위해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한국표준연력’ 서비스를 이용하였다. 보통 한 달을 초순, 중순, 하순으로 10일씩 나누어 부르고 있어 음력 1018년 2월 1일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1018년 2월 19일(수요일) 되며 음력 2월10일은 양력으로 2월28일(금요일)이 된다. 따라서 적성이라는 지명이 만들어 만들어진 기간은 양력 2월하순으로 볼 수 있다. 그 중 가장 기억하기 좋은날을  28일로 정하거나 2월 마지막주 토요일이나 일요일로 정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마지리에서 본 감악산 (사진:PHOSTO)

적성은 천년고도로서 많은 역사를 갖고 있는 지역이다. 감악산은 화악산, 송악산, 관악산, 운악산과 더불어 경기5악 중에 하나이며  주월리에는 구석기 유적지와 육계토성이 있고 구읍리에는 칠중성이 있다

특히, 당나라 장수인 설인귀가 적성에서 태어나서 말을 타고 감악산을 누비며 무예를 닦았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설인귀가 태어난 곳은 백옥봉(육계토성) 이고, 그의 용마가 났다는 율포리, 무예훈련장이었던 무건리와 설마치 고개, 말밥굽이 가장 많이 남았다는 마지리도 전설과 연관이 있다고 알려진다.

설인귀는 원래 중국 강주 용문 출신으로 당나라 태종이 고구려를 공격할 때 자진해서 군졸로 입대하였다가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많은 공을 세워 유격장군이 되었다. 고구려 멸망후 안동도호부에 파견되어 고구려 영토를 관장하기도 했다.

설인귀는 농부출신으로 각종 전투에서 용맹을 발휘하여 대장군까지 신분상승한 주인공으로 중국의 민간전설에도 많이 등장하고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감악산 정상에 사당과 비석을 설치하여 제사를 지냈다는 역사기록이 남아있다.

설인귀가 당나라 장수이지만 특이하게 파주일대에 긍정적인 대상으로 추앙되고 있어 학계에서도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그중 권도경의 ‘설인귀 풍속신앙 전설의 서사구조적 특징과 전승의 역사적 변동 국면’ 에서는 고구려 영토를 통일신라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정치적인 목적으로 설화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적성은 임진강 주변에 있으며  지세가 험악한 산악지형이라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이다 . 6.25 전쟁 중에도 대규모 전투가 있었으며, 감악산 정상 동굴에 임꺽정이 관군을 피해 숨어 있었다는 전설이 있어  스토리텔링 요소도 풍부한 지역이다.

최근에는  설마리 계곡에 출렁다리가  개통되어 많은 관광객이 찾아 오고 있다. 또 영국군 설마리 전투비가 있으며 임진강변의 두지리는 매운탕 음식점으로 유명한 지역이기도 하다.

영국군설마리 전투 추모공원 (사진:PHOSTO)

특히, 마지리 시가지에 있는 적성전통시장이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골목형시장’으로 지정되어 한우마을로 육성하고 있으며 설마리 출렁다리 입구에는 기존에 수해로 철거되었던 음식점 및 상가들이 입주할 관광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내년 2월이면 적성지명이 천년이 된다. 경주는  ‘천년고도’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관광자원과 연계하여 마케팅을 하고 있다. 적성도 충분하게 ‘천년적성’ 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홍보할 수  있을 것이다.

적성의 역사적 자원, 감악산의 머루주와 펜션, 임진강과 두지리 매운탕, 감악산 출렁다리, 운계폭포, 감악산 등산 코스와 적성전통시장의 한우식당을 연계하여 일관된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동안  적성은 파주의 변방이고  낙후된 지역으로 알려져 있지만  ‘천년적성’이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이끌어 간다면  내년  2월은 적성시민에게 자긍심을 부여하고 지역 발전을 위한 획기적인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기상의 색다른 파주이야기 23호]

-적성 지명 천년을 맞으며 2017.8.1 ver2z-

본 내용은 PDF 파일로 다운 받을 수 있으며 “PHOSTO/포스토’는

파주이야기에서 특허청에 등록한 상표입니다.

》 천년적성 다운로드

 

<참고자료1>

○罷諸道安撫使, 置四都護八牧五十六知州郡事二十八鎭將二十縣令

“파제도 안무사, 치 4도호 8목 58지주군사 28진장 20현령”

(高麗史節要 卷3  顯宗元文大王  顯宗 九年  二月 )

고려사절요 권3 현종원문대왕 현종9년 2월

 

<참고자료2>

積城縣本高句麗七重城, 新羅景德王, 改名重城, 爲來蘇郡領縣. 高麗初, 更今名. 顯宗九年, 爲長湍縣屬縣. 文宗十六年, 來屬. 睿宗元年, 置監務. 有紺嶽【自新羅, 爲小祀. 山上有祠宇, 春秋降香祝, 行祭. 顯宗二年, 以丹兵至長湍, 嶽神祠, 若有旌旂士馬, 丹兵懼而不敢前, 命修報祀. 諺傳, 羅人祀唐將薛仁貴, 爲山神云.】

“적성현(積城縣)은 원래 고구려의 칠중 성(七重城)인데 신라 경덕왕은 중성현(重城)으로 고치고 내소군(來蘇郡)의 관할하에 현으로 만들었다. 고 려초에 지금 명칭으로 다시 고쳤고 현종 9년(1018)에 장단현의 소속현으로 되었다가 문종 16년(1062)에 본부[왕경 개성부]에 소속시켰으며 예종 원년(1106)에 감무를 두었다.”(고려사  권56, 지10 , 지리1,> 왕경 개성부  적성현)

 

1872년 적성지도

 

 

고려사절요 현종9년 2월 기록 11건중 ‘안무사를 혁파하다’가 행정구역 개편 기록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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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사진
  • 중성산 전경
임잔강이 보이는 칠중성 전경 <문화재청 제공>

2 thoughts on “적성 지명 천년을 맞으며

  1. 천년적성 지명의 오류 알림

    지난 8월 ‘적성(積城) 이라는 지명이 1018년 고려 현종 9년에 처음 만들어져 내년 2018년 2월이면 1천년이 된다.’라고 ‘색다른 파주이야기 제23화’ 주제로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역사 관련 전문가의 자문결과에 따르면 적성현은 고려초(고려 개국 918년)에 이미 사용했다는 문헌이 있어 최소한 1000년 이상 1100년 이전에 지명이 만들어 졌다는 의견입니다.

    1451년에 간행된 ‘고려사 권56, 지10, 지리1’에 ‘ 적성현(積城縣)은 신라 경덕왕이 중성현으로 불렀던 것을 고려초에 적성현으로 고쳤고 현종9년(1018) 행정구역 개편시 이전 명칭을 그대로 장단현에 소속 시켰다’는 내용을 근거로 하였습니다.

    ‘적성(積城)’이라고 표기된 지명이 역사 문헌에 처음 등장한 현종9년(1018)을 ‘천년적성’이라고 발표하였지만 이미 고려초에 사용되어 천년이상 되었다는 것으로 판명되어 오류를 바로 잡습니다.

    파주이야기 편집자 이기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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