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좁은 파주시청 어떻게 넓어졌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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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좁은 파주시청 어떻게 넓어졌나?

 -송달용 전 파주시장 회고록 제61화-

 

파주군청은 6.25 전쟁 전에는 임진면 문산리 삼거리에 있었다.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모두 피난을 갔다. 수복과 동시에 임시 군청이 금촌에 있으면서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되어서도 문산에 주민 입주가 지연되면서 임시 군청이 아동면 금촌리에 분산되어 있다가, 현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미군의 대민지원의 일환으로 지원을 받아 내무과와 산업과 두 개과의 군 청사를 지었다. 금촌 사거리에서 군청에 가려면 논두렁 밭두렁을 건너서 산기슭까지 올라가야 했고 1957년까지 임진면 문산리의 주민 입주를 통제하여 군청이 언제 들어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법적 절차를 거쳐 아동면 아동리 현 위치로 군청 소재지를 결정하였다.

군 청사 부지는 총 1,300여 평이었다. 군청기구가 식산과, 건설과, 공보실, 감사실로 확대되면서 올망졸망한 군 청사를 짓고 좁게 사용하여 오다가, 1976년에 현, 청사를 새로이 건축하였다. 그러나 청사 부지가 너무 좁았다.

아동면 아동리(앞골)에 거주하는 최병훈 사장이 군청 주변의 임야와 전답을 많이 소유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제분업을 경영하다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국세를 내지 못하게 되었다. 그 일로 세무서에서 세금징수 차원에서 의정부지방법원에 경매를 신청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김낙승(작고) 전 재무과장으로 하여금 세무서의 경매여부를 확인토록 한 결과, 군청에 인접해 있는 전답과 임야 7,500평을 경매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군수에게 보고하여 우리도 경매에 참가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예산을 조치했다. 재무과장은 경매 날짜를 확인하여 경매일에 의정부지원에 가서 입찰에 응하는 사람이 없으면, 응찰하지 않고 돌아오곤 했다. 유찰될 때마다 경매 가격이 20%씩 떨어지게 되어 있었다. 유찰이 반복되다가 3차 경매 시 입찰에 응하려는 사람이 나타났다.

재무과장인 김낙승 과장이 입찰에 응하려는 사람을 붙잡고 파주 군청에 인접해 있는 땅이라 군청에서 매수하려고 하니, 양보해 달라고 사정하여 양해를 얻었다. 더 이상 지체하기 어려웠다. 재무과장과 상의해 입찰에 응하여 7,500평을 760만 원에 낙찰을 받았다. 그래서 옛 보건소 자리, 현 청사 화단과 주차장, 의회회관 등을 지을 수 있었다. 또한 내가 군수로 있을 때인 1988년 현재 대공연장과 소공연장, 그리고 금촌도서관, 민원실 일부가 있는 2,000평 임야의 소유자가 건축물을 짓겠다는 보고를 받았다.

군청 옆에는 절대 허가할 수 없다는 것을 토지 소유자에게 전했다. 그리고 군청 땅 대지와 교환하자고 제의하였다. 군청 땅은 4차선 도로변에 연접된 한국전력 파주지점 맞은편의 대지 350평이 있었으므로 2,000평 임야와 교환하자고 했다. 가격으로 따지자면, 군청 소유의 대지값이 더 비쌌다.

토지 소유자는 땅의 이용이 즉시 가능했기 때문에 동의하여 교환이 이루어졌다. 교환된 파주군청 땅은 주유소를 설치 운영하다가, 현 밀레니엄 아파트 부지로 매각된 것 같다. 파주시청 부지는 이렇게 두 번에 걸쳐 매수, 교환됨으로써 아주 싼값으로 현재의 파주시청 부지를 마련하게 되었다.

 

<자료파일 제공  도서출판 헵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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