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아는 비밀에 시치미는 왜 떼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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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는 비밀에 시치미는 왜 떼시나?

  -송달용 전 파주시장 회고록 제47화-

1985년 7월 4일, 나는 가평군 청평호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나룻배 전복사고를 미리 방지하지 못했다는 책임을 지고 직위해제를 당했다가 1986년 3월 8일자로 고양군수로 복직되었다.

고양군은 근 80%가 그린벨트 지역이어서 주민의 생활불편에 따른 민원이 늘 끊이지 않았다. 거기에 나환자촌까지 있어서 상습적인 불법 개간, 불법 건축, 불법 농지매립 등으로 산업단지를 방불케 하는 공장지대를 이루고 있었으나 단속의 손이 미치지 못했다. 나환자촌은 치외법권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고 서울과 인접해 있는 고양군 한강 제방에 쓰레기를 불법으로 갖다 버리는 이들도 많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다들 고양군수로 발령 나는 것을 꺼려했다.

당시 고양군수로 발령 받고 업무파악도 덜 된 상태에서 고양군 내에서 여론을 주도하는 유지 한 분인 이은만 씨가 내게 찾아와 하는 말이 “고양군은 파주군 고양읍”이라고 비아냥거리는 것이었다. 고양군과 파주군은 같은 선거구로 국회의원 이용호, 이영준 등이 모두 파주 출신이었고, 고양군수도 파주 사람이며, 임병학 농촌지도소장도 파주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의 속내는 나 역시, 파주 출신이기 때문에 고양군 발전에 신경을 덜 쓰지 않겠나? 하는 것이었다.

이에“두고 보시오. 만약에 내가 고양 발전에 기여하지 못한다고 하면, 나는 파주를 갈 수 없을 겁니다. 고양 땅을 지나야 파주를 가는데, 고양군 주민들이 나를 파주에 가도록 그냥 두겠습니까?”라고 했다.

고양군의 제일 큰 문제는 불평과 불만이 많은 그린벨트 지역의 관리였다. 나는 주민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소소한 민원도 직접 확인했다. 지원할 것은 과감하게 지원하고, 해결해야 할 것은 그 즉시 주민 의사에 맞게 처리하여, 주민의 신뢰를 얻는데 노력했다. 공무원들 또한 군수인 나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솔선수범을 하였다.

고양군청의 소재지인 원당읍에는 직원들이 점심을 먹을 만한 식당이 별로 없었다. 점심시간만 되면 서울 연신내나 신촌으로 나가 점심을 먹고 왔다. 그러다 보니 20~30분씩 늦는 것은 보통이었고 누구 하나 단속하는 이도 없었다. 저녁이면 또 연신내, 불광동, 신촌 등지로 나가 술을 마시기 때문에 고양은 공동화 현상이 일어났다.

이런 직원들을 단속하지 않는 대신 군수부임 첫 월례조회 때,“나는 점심이나 저녁에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실 일이 있어도 절대로 관외로 나가지 않는다.”라고 공표했다. 고양에서 밥도 먹고 술도 마셔야 고양 주민들의 경제 활성화가 이뤄질 것이고 공무원들이 먼저 솔선수범하여 고양지역 내의 식당을 이용한다면 공무원에 대한 신뢰도 형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직원들에게 관외로 나가지 말라는 말도, 단속하라는 지시도 하지 않았다. 직원 스스로 실천하도록 하여야 불만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후로 직원들이 점심이나 술을 마시는 일이 있어도 서울 등 멀리 나가지 않았다.

어느 날, 일산읍장이 군수실로 찾아와 사표를 내겠다고 했다. 고양군 읍·면장을 국회의원이 벌써 지명을 다 해서 여론이 시끄럽다는 것이다. 군수인 나와는 전혀 협의한 바가 없었다. 내무과장에게 사실 확인을 지시하였더니 사실이라 했다. 읍·면장 회의를 개최하여 당면 사항을 지시했다.

그리고“요즘 읍·면장 인사이동에 대해 말이 많은 것 같다. 인사권은 군수에게 있는 것이지 국회의원에게 있는 것이 아니니, 읍·면장은 걱정하지 말고 일에 전념하라.”고 지시했다.

군수의 인사권이 흔들리면 직원을 통솔할 수가 없다. 직원이 군수의 명령은 따르지 않고 국회의원의 얼굴만 쳐다보고 업무를 소홀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사권이 국회의원에게 있지 않음을 그들에게 인식시켜야 했다. 그래야 업무를 추진함에 있어서 흔들림이 없기 때문이다.

1987년, 고양군과 파주군의 선거구가 분할이 되어 선거를 치르도록 법이 개정되었고 고양군에서는 이택석과 이국헌 변호사가, 파주에서는 이영준 의원은 출마를 포기했고 이용호의원과 최무룡이 대결했다. 고양군에서는 고양 출신이 국회의원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고양군 출신인 이택석 후보가 무조건 당선될 가능성이 높았다.

파주군의 이용호 의원은 2선의 전적이 있었고, 민자당 재정위원장까지 한 중진이었다. 최무룡은 배우로서 명성은 있으나, 정치인의 자질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이용호 의원이 될 것이라고 파주 사람들은 판단하고 있었다.

이때쯤 고양군과 파주군에 기관장 자리 세 개가 생겼다. 이러한 자리가 생기면 인사할 때 국회의원의 의견을 사전에 협의하여 결정하는 것이 통례였다. 파주에 농지개량조합장과 의료보험조합장, 고양군에 의료보험조합장 의 세 개의 자리가 생긴 것이다.

도지사는 세 자리 중 두 자리는 국회의원 마음대로 하고, 한 자리는 공무원의 승진을 위해서 지사에게 양보하는 것으로 협의했다. 그러나 이용호 의원은 세 자리 모두 자기가 추천하겠다고 나섰다. 나는 이용호 의원에게 고양과 파주의 선거구가 분리되니 고양의료보험조합장은 지사에게 양보하고 파주군의 두 개 자리를 지명하시라고 조언했다.

이 의원은 의견을 굽히지 않고 고양지구당 사무국장을 고양의료보험조합장으로 임명 제청하라고 해서 하는 수 없이 이 의원의 요구대로 경기도에 제청하여 발령을 냈다.

그 후 얼마 뒤 나는 1988년 6월 11일자로 파주군수로 전보되었다. 그때까지도 파주군의 농지개량조합장과 의료보험조합장 임명을 놓고 도지사와 의견 충돌의 상태로 있었다.

지사는 나에게 의정부 부시장을 퇴임 발령하였으니, 의료보험조합 대의원회의에서 임명 동의하도록 하라고 지시를 하였다. 그러나 파주의료보험조합장에 예정된 이는 권오운 전 파주읍장이었다.

권오운 읍장은 내 고등학교 선배이며 평상시 가깝게 모시던 분이어서 찾아가 사정 이야기를 하였더니“송 군수가 부탁하는데, 내가 쾌히 양보하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지사에게 보고하고 조달현 부시장의 주민등록을 파주로 이전하고 의료보험조합 대의원회의를 열어 운영위원들을 설득하였다. 그렇게 하여 조달현 부시장은 초대 파주의료보험조합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농지개량조합장에는 신예범 총무과장이 승진 발령되었다.

돌고 돌아서 다시 내무국장에 있게 되었을 때, 의료보험조합장의 임기도 끝나가고 2대 새로운 조합장을 임명하게 되었다. 권오운 읍장이 조합장으로 임명하는 과정에서 혹시 미비점이 있다 하더라도 승인해 달라고 도의 담당과장과 국장에게 협조를 부탁했다. 어려운 시기에 과감하게 도와준 권오운 읍장이 조합장으로 임명되어항상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마음의 짐을 덜어서 홀가분해졌다.

파주군수로 온지 6개월 만에 장안구청장으로 다시 발령이 났다. 이용호 의원이 나를 장안구청장 전보에 동의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하나는 고양군 읍·면장을 자기 뜻대로 발령하는 데 동의하지 않음으로써 망신을 줬다고 생각한 것이고, 또 하나는 파주의료보험조합장 임명에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고 도지사 편에서 다른 사람을 임명토록 한 것에 감정이 좋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1988년 12월 26일.

“도에서 전화가 왔는데, 군수님의 지방공무원 전출동의서를 요구한다.”고 행정계장이 보고하였다. 동의서를 보내라고 하고 지방과에 확인을 하였더니 장안구청장으로 자리를 옮기도록 지사의 지시를 받았다는 것이다.

1988년 12월 28일 회의실에서 직원 송년회가 개최되었다. 이에 이용호 의원을 대동하기 위해 당사로 갔다. 전출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치미를 떼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다. 나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태연하게 이용호 의원과 송년회에 참석하였다.

직원 송년회가 졸지에 이용호 의원과 직원들이 함께한 나의 송별모임이 되고 말았다.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누가 뭐라고 하나? 다 알고 있는 사실에 왜 시치미를 떼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6개월 만에 나는 파주를 떠났다. 읍·면장과 송별회도 못하고 야반도주하는 사람처럼 1989년 1월 1일자로 장안구청으로 발령이 났다.

며칠 뒤, 지사가 나와 이영해 권선구청장을 도지사실로 호출했다. 지사가 나에게“파주의 여론을 잠재울 수 없겠냐?”고 하여 그 이유를 물으니 내가 떠난 것에 대해 주민들의 말이 많고 경찰서 정보과 보고가 매일 올라와서, 현 군수를 불러다가 이용호 의원이 동의를 해서 부임한 것이라고 주민들을 설득하라고 지시해 지금 막 돌려보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내게도 주민의 여론을 좀 잠재워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지사님이 이용호 의원의 동의에 의하여 군수를 교체하였다고 하면 이용호 의원도 싸잡아서 더 여론이 악화되니,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비서를 불러 지금 막 파주군수가 나갔으니 찾아보라고 하였으나 찾지를 못했다.

지사는“도에 국장으로 들어오려면 도시행정을 잘 알아야 하기 때문에 수원시구청장으로 불러들인 것이니 그리 알라”며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권선구청장한테“ 도시 행정을 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권선구청장은“양평군수, 평택군수를 하였기 때문에 별로 한 일이 없다.”고 하였다.

지사는 내게도“송 청장은 도시행정을 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도시행정이 어느 것인지는 몰라도 의정부 부시장, 안양 부시장, 과천출장소장을 지내면서 도시에 관한 일들을 했는데 그것이 도시행정에 해당되는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지사는 도시행정을 많이 하였으니, 다음에는 도시국장으로 발탁하겠다고 내게 말했다.

그날 저녁, 나는 파주군수에게 전화를 걸어, 도에 가서 도지사를 만나 그간에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이용호 의원이 동의해서 군수로 왔다는 말은 하지 말라고 그에게 전했다. 만일, 그 이야기를 하게 되면 이용호 의원의 입장이 더 곤란해질 것이라고 했다. 파주군수는 몹시 기분 나쁜 어조로“그런 것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고 물어 보길래,“오늘 지사가 파주의 여론을 무마하여 달라며 모든 이야기를 하더라.”고 했다.

이렇게 내용을 상세히 알고 있는데도 이용호 의원은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모르는 척 하고 있는 그 마음은 오죽할까 싶기도 하였다.

<자료파일 제공  도서출판 헵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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