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동력양수기로 물을 대라-제4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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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동력양수기로 물을 대라

 -송달용 전 파주시장 회고록 제42화-

반구정에서 본 임진강
용암절벽
공릉천 하구습지

‘빨간 마후라’하면 나라를 위해 장렬히 목숨 바친 젊은 보라매와 한국 최고의 스타 최무룡이란 배우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가 어떻게 해서 정치권에 뛰어들었는지 알 수는 없다. 배우로 성공하는 동안 한 번도 고향인 문산을 찾은 적 없는 최무룡이 정치 불모지에서 당 공천을 받고 십 여 일간의 선거운동만으로 2선 국회의원을 제치고 당선이 되었다는 것은 톱 뉴스중의 톱 뉴스였다.

이용호 국회의원을 비롯한 참모들이 배우인 최무룡쯤은 가볍게 제치고 전국 최고의 득표를 얻을 것이라고 자만하고 너무 방심하였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파주 유권자들이“내가 아니어도 이용호는 당선될 거야”라고 최무룡 쪽으로 기울어졌던 것은 아닐까, 여성 유권자들의 쏠림 현상은 아닐까 하는 추측이 난무했다. 어쨌거나 이용호 의원은 당선이 유력해 자신에 차 있었으나, 파주 주민이 진솔한 최무룡 쪽으로 하나둘씩 마음이 기울어 가는 것을 무관심하게 방심한 것일 수도 있다.

때마침 최무룡의 아들 최민수가 나오는 인기 드라마의 탤런트들과 영화배우들이 선거운동에 총동원되어 장마당과 거리를 휘젓고 다니며 붐을 일으켰다. 특히, 부녀자들은 최무룡과 악수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따라다녔고 거기에는‘빨간 마후라’의 명성이 한몫을 한 것 같았다. 선거는 바람이 한번 불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어 제아무리 큰 거목도 한순간에 넘어가기 십상이다.

최무룡 의원을 극장의 스크린으로만 보았지 실제로 보기는 파주군수로 있을 때가 처음이었다. 그의 첫 인상은 부드럽고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만나자마자 나에게 군수로서 소신을 가지고 군정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일침을 놓으며 마치 행정의 달인처럼 내게 충고를 했다.

어느 날은 관내 행사에서 만나게 되었다. 행사자리에서 무동력 배수시설을 하면 예산도 절약되니 한번 해보라면서 업자를 소개할 테니 만나 보라는 것이었다. 알았다고 대답하고 언제든지 보내라고 했다.

하루는 최 의원의 소개를 받은 업자가 찾아와서 무동력 양수기에 대하여 설명 하였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파평면 장파리 위쪽에 임진강을 막고, 그 옆으로 농수로를 내면 동력 양수기 없이 물을 댈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임진강을 막는 데 필요한 자금조달은 어떻게 할 계획이냐고 하였더니, 상류의 모래를 팔아서 충당하면 조달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그야말로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 팔아먹는 꿈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에게“법을 제대로 알고나 하는 말이냐? 내용도 모르는 국회의원을 동원해 이권에 관여하고 국회의원을 무식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냐?”고 심한 말을 퍼부었다. 그에 이어서“임진강은 국가 직할 하천이다. 즉, 군수의 소관이 아니고 임진강을 막으려면 건설부장관의 공작물 설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모래 채취는 공개경쟁입찰을 통해 채취업자를 지정하기 때문에 당신과 같은 업자에게 수의계약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임진강을 막을 만한 재원을 충당할 만한 모래도 임진강에는 없다. 게다가 홍수대비 문제도 있어서 당신 말처럼은 할 수 없으니 다시는 그런 생각을 하지 마라”고 충고를 하고 돌려보냈다.

얼마 후, 최 의원을 다시 만났다. 그는 다짜고짜 군수가 소신도 없이 무사안일하게 무동력 양수장 시설을 반대한다고 정색하며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다시 검토해서 허가를 해주라는 것이었다. 최 의원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를 시키기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검토하겠으니, 그 업자를 다시 보내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업자가 다시 찾아왔다.

그 자리에서“최무룡 의원에게 얼마를 주고 밑천을 빼내려고 하느냐?”고 직설적으로 따져 물었다. 그리고“건설업을 하는 사람이 이 정도의 법적 내용도 모르고, 행정을 전혀 알지도 못하는 국회의원에게 무조건 압력을 넣어 이권을 챙기려고 한다면, 전국 건설협회와 건설부장관에 건의하여 건설업 면허를 취소하도록 할 것이다. 또 언론에 공개도 할 것이니 다시는 최 의원을 괴롭히지 말라! 또 다시 최무룡 의원이 무동력 양수시설 이야기를 하면 당신을 그냥 두지 않겠다.”고 하며 돌려보냈다.

그 후로부터는 최 의원이 무동력 양수장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하는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다.

최무룡 의원은 전두환 대통령 청문회 때 당대표 질의자로 나왔으나, 질의 내용의 빈곤으로 파주 군민을 낯 뜨겁게 만든 일도 있었다. 그 후 내무국장으로 있을 당시, 최 의원을 도지사와 함께 행사장에서 만났다. 최 의원은 무척 반가워하며 묻지도 않았는데“이번에 내가 예결위원으로 가게 되었으니, 파주를 위하여 예산을 많이 따서 파주 발전에 기여할 기회가 왔다.”고 자랑삼아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최 의원은 참으로 순진하고 아직도 국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매년 연말이면 지사는 경기도 출신 국회의원을 초청하여 도정 보고도 하고, 도정 발전을 위하여 협조를 당부하는 송년파티를 열어 친목 다짐의 행사를 갖는다.

이 행사에 참여한 최무룡 의원은“예결위에서 파주 예산을 확보하려고 했는데, 예산 이야기는 안하고 국정질의만 하여 예산을 딸 수가 없었다. 국회의원을 하려면 나 같은 사람보다는 송 국장처럼 행정을 잘 아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너무 솔직하고 순수한 국회의원이어서 정치적으로 이용만 당하고 좋지 못한 끝을 보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최무룡 의원의 사망통보가 왔을 때였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조상을 하고 상주인 최민수에게“어떻게 모시느냐?”고 했더니 신문에 보도된 대로 화장하여 산에 뿌리겠다는 것이다. 이에 유족대표에게 최무룡 의원은 우리나라의 톱 배우이면서, 국회의원까지 지냈으니, 묘비 정도는 있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조언을 구했고 가족들은 논의 끝에 묘비를 세우는 쪽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신문에 이미 산에 뿌리겠다고 보도된 상태여서, 화장 후, 유골을 바로 공원묘지로 가져갈 수 없어 3일간 유골을 보관하였다가 지금의 탄현면 경모공원에 안치했다.

국회의원이었다는 비석을 안고 최무룡 의원은 파주 고향땅에 고이 잠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