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수해 상습지를 벗어나다-제3화- 송달용 前파주시장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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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수해 상습지를 벗어나다-제3화-

1996년 7월 26일.

1998년 8월 5일.

1999년 7월 31일.

3회에 걸쳐 상상을 초월한 대홍수가 발생하였다.

그중, 문산 시가지는 2회(1996, 1999)에 걸친 침수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가옥침수, 제방붕괴, 농경지 침수, 도로, 교량 파손 등 6.25 전쟁을 방불케 하는 현장에서 이재민의 아비규환과 주민의 한탄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사전에 대비하지 못한 인재라는 규탄의 목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시장인 나는 뭐라 할 말이 없었고 대책도 서지 않았지만 단 하나, 빨리 복구해서 주민생활이 안정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번 위기를 기회 삼아 주민들이 홍수의 공포에서도 벗어나고, 파주가 더는 수해상습지역이라는 오명을 쓰지 않도록 해야만 했다.

사실 파주는 이때뿐 아니라, 1965년 7월 16일 422㎜의 강우량으로 문산 제방이 범람하여 가옥 600여 가구가 2m이상 침수된 적이 있었다.

그 후 30년 만인 1996년 7월 26일부터 28일까지 3일간 집중호우로 443㎜의 비가 내렸고 이 비로 연천군에 한국 최초로 건설한 소수력발전소댐(청산댐)이 붕괴되었다.

1996년 수해시 문산시가지

집중호우와 유두사리(萬潮) 때가 겹쳐서 임진강의 수위가 상승하여 자연배수도 되지 않은 데다가 선유리 여우고개에서 내려오는 물이 동문천으로 배수되지 않고 철도 밑 수문을 통해 문산 시내로 들어와 시가지 물과 합쳐지니, 문산 시내에 설치된 분당 190톤의 300마력 양수기 2대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양이 되었다.

두 번째 홍수는 1998년 8시간 동안 내린 541㎜의 집중호우로 파주시 전역에 피해를 주었다. 다행히 이때는 문산읍의 침수는 없었으나 파주시 전역의 이재민이 6,417세대에 걸쳐 21,053명이 발생했고, 파주 농경지의 64%인 6,417㏊가 침수피해를 보았다.

그다음 해인 1999년에는 7월 31일부터 8월 4일까지 내린 765㎜의 폭탄 강우량은 적성면에 1,032㎜로 가장 많이 퍼부었고, 최저는 657㎜로 조리읍이었다. 파주시의 연간 강우량 1,269㎜의 64%가 5일 동안에 내린 것이었다.

이 폭우로 1,736가구에 5,194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문산 시가지가 두 번째로 침수되는 참변을 겪은 문산읍 주민들은 지난번 침수를 당하고도 대처를 하지 못한 것은 인재라고 시청에 집단으로 몰려와 항의하며 민원을 제기하였다.

문산 시가지 재침수의 원인을 분석해 보면, 다음의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임진강 상류의 연천, 포천 지구에 1,000㎜ 이상의 상상을 초월한 강우량과 6월 만조와 합쳐 역류현상이 일어난다는 점.

둘째는 문산 시내 양수장의 배수용량이 분당 190톤 능력의 300마력이 2대 뿐인데 예산관계로 추가 용량을 확장하지 못했다는 점.

셋째는 1996년 수해 이후, 경의선 철도와 동문천 미개수로 철도를 넘고 제방을 넘어서 유입되는 수량을 막기 위한 통일로 높이기 공사를 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 수가 있다.

흥분한 문산읍 주민들은 홍수에서 벗어나기 위한 파주시장의 방침과 대책에 대해 주민과 함께 토의하자고 제의해 왔다. 토의 장소를 문산 공설운동장으로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성토하자는 것이지 토의하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응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러자 문산초등학교 체육관에서 하자고 하여 이에 동의하고 주민 1,000여 명 앞에서 주민대표와 토의를 하였다.

우선 주민에게 사과하고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문산이 재침수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하고 나서야 토의 두 시간여 만에 주민들은 해산했다. 홍수피해로 가옥이 침수되니, 이재민 구호, 식수, 쓰레기, 분뇨처리 문제가 가장 시급했다.

식수문제 해결을 위해 처음엔 생수를 구입해 문산읍사무소에서 이재민들이 필요한 양을 가져가도록 하였다. 그러나 수재민들은 먹을 만큼만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은 물을 박스로 가져다가 목욕을 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래서 물을 박스째 내놓지 말고 풀어서 놓으라고 했다. 낱개로 가져가면 많이 가져간다고 해도 몇 개밖에 가져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구호품을 지원하는 기관과 개인들도 상수도 공급중단으로 물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많은 양의 생수가 지원되었으나 피해 규모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골목마다 2톤짜리 플라스틱 통을 배치하고 이재민들 스스로 가져갈 수 있도록 고양시·양주군 등 타 시·군의 소방차량을 추가로 지원 받아 수돗물을 골목 물통에 공급했다.

가옥침수로 이재민의 식사 또한 문제였다. 침수된 가옥의 이재민들은 식사 도구도 없을 뿐 아니라 저녁에 잠자리도 학교 체육관에서 해결하고 있었다. 이에 경기도 적십자사로부터 1회에 300명이 급식할 수 있는 최신식 장비를 지원받아 문산초등학교에 설치하고 아침, 점심, 저녁을 부녀회원으로 하여금 무상 제공토록 했다.

중앙도로와 골목마다 침수된 가구 정리와 홍수 쓰레기들로 가득 차서 사람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쌓여 있었다. 경기도에 협조요청을 하여 타 시·군의 쓰레기차량 지원과 수도권 매립지에 수해 쓰레기를 받도록 협의하여 처리했다.

분뇨는 날씨가 더운 탓에 악취가 더욱 심했고, 작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분뇨흡입차량을 타 시·군으로부터 지원받아 급한 것부터 해결했다.

지원 인력도 턱없이 부족했지만 자원봉사자들과 특히, 제1사단·9사단·101여단 장병들의 도움이 컸다. 그들의 수해복구지원이 아니었다면 주민들만의 힘으로는 그 엄청난 양의 쓰레기와 주택침수로 인한 진흙의 제거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더운 날씨라 땀을 비 오듯 흘려서 군복을 적시고 온몸에 진흙이 튀어도 묵묵하게 열심히 복구 작업에 임하는 아들과 같은 군인들을 보면서 고맙고 또 고마웠다. 뿐만 아니라 송영근 1사단장과 이상태 9사단장, 101보병 여단장은 거의 매일 같이 나와 부대 일처럼 독려와 지휘를 하였다. 정중민 1군단장도 공휴일 없이 문산 침수현장에서 장병들을 격려하고 작업지시를 도맡았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수해복구가 조속히 이뤄졌으니 그 고마움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감사의 뜻으로 고생한 장병들에게 삼복 중에 삼계탕이라도 지원하고 싶어 군단장과 협의를 하였으나 군단장은 그럴 필요가 없다며 지원을 마다했다.

그러나 파주시 이재민을 대신하여 그 고마움에 조금이라도 꼭 보답하고 싶어 추석에 돼지 200마리를 보내고 군단장의 위문을 부탁하며 감사의 뜻도 함께 전했다.

파주의 수해 상황이 TV와 신문에 대서특필되고 김영삼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국무총리, 한나라당과 민주당 당수들을 비롯하여, 각 부처장관, 실무 국장들까지 거의 매일 복구현장을 방문해 격려했다. 나는 수해 피해상황과 복구 추진상황, 건의사항 순으로 직위에 관계없이 직접 보고를 하고 특히, 건의사항의 내용이 실행될 수 있도록 했다.

무엇보다도 문산 시가지가 2회에 걸쳐 침수가 되었으니 다시 침수되지 않도록 배수시설과 파주 전체의 미개수(未開水)된 하천을 응급복구가 아니라 항구 복구하도록 건의했다.

그에 힘입어서 충분한 예산은 아니지만, 중앙재해대책본부의 지원이 이루어졌다.

제일 먼저 1996년과 1999년 2회에 거쳐 침수된 문산에 배수펌프장을 집중 투자하여 시가지가 다시 침수되지 않도록 전면 보수토록 했다.

문산의 배수장은 과거에 분당 190톤을 처리하던 배수펌프를, 350마력 용량 6대를 더 설치하여 분당 900톤의 용량으로 대폭 늘렸다. 혹시 배수장이 침수 되더라도 가동될 수 있도록 전기배전판을 2층에 설치하고, 배수펌프를 수중펌프로 하여 침수 시에도 가동할 수 있도록 했다.

배수장의 시설을 개수(改修)했어도 시내에 내린 빗물이 빨리 배수장까지 도달하지 않으면 또 침수가 이뤄질 수 있어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하수도를 현재의 네 배로 확장했고 또 여우고개 빗물이 철도 밑의 하수도를 통해 시내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수로를 동문천 쪽으로 돌려 통일로변(선유3리)에 600마력 용량의 배수펌프 4대를 설치해서 분당 1,000톤이 동문천으로 배수될 수 있도록 새로 배수장을 설치했다.

당동리 문산고등학교 지역의 빗물은 임진강 수위가 상승하면, 단독배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400마력 용량의 배수펌프 3대와 200마력 용량의 배수펌프 2대를 설치해 분당 540톤을 배수토록 했다.

덕분에 문산 시가지에 집수(集水)되는 면적은 58㏊로 줄었다. 웬만한 홍수에는 견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수(內水)는 배수시설로 처리할 수 있지만 임진강물이 범람해 발생하는 외수(外水)의 침수를 막기 위해서는 시가지를 둘러싼 낮은 문산천 제방을 손봐야 했다. 이에 홍수 방지벽을 하동에서 동문천 다리까지 설치하고, 미관을 살리기 위해 연산홍, 철죽꽃 등의 화단을 조성했다.

문산읍 선유4리도 저지대로 1996년과 1999년 수해 때 침수된 적이 있어 배수장을 새로이 시설하고, 250마력 용량의 배수펌프 4대로 분당 500톤을 배수할 수 있도록 설치했다.

금촌 시가지의 침수는 통일로에서 금촌으로 신설된 도로를 따라 통일로의 빗물이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도로승상 공사를 하였고, 금촌역을 중심으로 침수되는 것은 기존 순달교 옆에 배수장으로는 용량을 감당하기 어려워 배수장을 공능천 변 교하교 옆에 새로 신설하고, 737마력 용량 배수펌프 5대를 설치해 분당 1,500톤을 배수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봉일천 시가지와 봉일천 2리(군인하사관 주택) 저지대의 주택들은 조금만 비가와도 침수되어, 배수장을 새로이 시설하여 600마력 용량 배수펌프 5대로 분당 1,500톤을 배수하는 능력을 갖춤으로써 주택침수방지 대책은 어느 정도 이뤄졌다.

파주읍은 연풍리 대추벌과 안용주골에서 내려오는 소하천을 확장하면서 수로의 방향을 바꿔 침수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하천 정비사업도 임시복구가 아니라 영구대책으로 중앙과 도에서 3,448억 원을 지원받아 위급한 곳은 거의 하천개수(河川改修) 공사를 하였으며 특히, 동문천 교량에서 문산역을 지나 청도 APT, 선유리까지 저지대의 제방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시계획도로를 개설하였다.

후일 이 공사는 감사원 감사에서 예산낭비라는 지적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서울에서 문산까지 전철복선화 작업을 하면 철도가 자동적으로 높아지는데, 도로개설은 중복 투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철복선화 되기 전에 홍수가 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문산의 도로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국비지원으로 도시계획도로를 개설해 시가지의 교통소통에도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도로개설 사업을 강행하였다.

파주시의 문산 시가지가 완전 침수된 상황이 TV에 방영되고 연일 신문기사가 보도되면서 각지에서 각종 수해구호품과 의연금이 도착했고,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해 주었다. 구호품을 직접 시청으로 가져오는가 하면, 외지에 나가 있는 출향민들은 자신의 출신지인 읍·면·동으로 직접 가져오기도 했다. 수해구호품 중 생수와 음식류는 당일로 읍·면·동의 수해지구로 보내고 그 외의 생활필수품은 시청 대회의실에서 접수, 보관했다가 침구류와 필수품을 배부했는데, 처음에 구호품을 배부하였더니 그들은 자기 집 복구 작업에도 나가지 않고 있었다. 이유인즉 자리를 비우면 배부된 수해구호품을 누군가 가져가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느라 복구 작업에 나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해구호품 박스를 만들어 침수된 집이 정리가 되고 입주가 되었을 때, 공정하게 배부하기로 하고 공무원, 학생, 군부대의 협조를 얻어 하루 60여 명이 수해구호품 박스작업을 진행했다.

품목별로 늘어놓고 손수레가 지나가는 대로 하나씩 넣고 마지막에 포장을 하면 수해구호품 박스가 완료되었다. 구호품 중에는 중고품도 있지만, 새롭고 예쁜 물품이 많아 작업하는 직원끼리 참 좋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작업을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자원봉사를 나온 문산여자고등학교 학생이 같이 봉사하면서 자기도 탐나는 물건이 있다며, 작업하는 공무원들이 좋은 것을 가져갔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시청의 기자실 여직원에게 이야기를 했다. 기자실 여직원은 기자에게 전달했고, 기자는 자신의 신분노출을 꺼려 사실여부도 확인하지 않고 경향신문 기자에게 정보를 제공했다.

1998년 9월 11일자 경향신문 사회면에‘공무원이 의연품 가로채, 파주시청 직원들 분류 과정서 너도 나도 슬쩍! 읍·면·동 거치면서 남은 것은 쓰레기 같은 구호품’이라는 제목하에 보도가 나갔다. 기사에서는 너무나 허무맹랑하게 공무원을 완전히 도둑놈 취급을 했다. 구호품 박스작업 과정에서 의류, 가방, 음료수뿐 아니라 의료응급세트까지 빼돌리거나 건강식품인 누에가루를 나누어 줄 대상이 없다는 이유로 가져갔다는 것이었다.

작업에 참여하지도 않은 시청직원이 수시로 수해 의연품을 가져갔고, 읍·면·동 직원들은 알짜는 갖고 허접한 것만 수재민에게 준다는 내용으로 신문에 보도되었다.

이런 내용이 보도되자, 철저히 진상을 조사하라는 국무총리의 특명이 내려졌고 그날로 경기도지방경찰청 수사과장을 반장으로 하는 수사팀이 구성되어 파주경찰서에 본부를 두고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팀은 구호품 박스작업에 참여했던 직원을 경찰서로 불러 경위조사를 하는 한편, 시청 대장과 읍·면·동에서 수재민에게 배부한 대장이 일치하는지를 대조하여 일치되지 않는 것을 보고 허위문서 작성으로 결론 내렸고 수해구호품의 배부결재도 국장 부재 시 과장이 대신 결재한 것을 직무유기로 판단했다.

작업에 참여했던 직원에게 수해구호품을 가져간 부분을 직원의 집까지 가택 수색하며 집중적으로 수사하였으나 증거를 찾지 못했다. 신문보도 내용에 의류, 가방, 음료수를 가져갔다고 보도되었으나, 음료수는 수해현장에서 즉시 배부하였고 의류는 누가 어느 사이즈에 맞는지 가족이 몇 명이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수해구호품 박스에 넣지 않고 읍·면·동에 배부해서 수재민으로 하여금 맞는 옷을 골라 가도록 했다. 의료품이라고 하는 누에가루 문제는 어느 용도에 쓰이는지도 모르지만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물건을 회사가 재고처리 차원에서 보낸 물품이 아닌가 여겨졌다.

수사 결과 신문보도 내용이 허위사실로 드러났지만, 사회과장과 복지계장은 직무유기와 허위문서 작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파주경찰서 유치장에 유치된 그들을 구속영장이 떨어질 때까지 대기시켰다.

상황이 이러했지만 나는 경찰서 수사본부를 찾아가지 않았다. 시장이 수사본부를 찾아가서 잘 봐달라고 하면 정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고 또한 우리 직원들이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담당국장의 보고에 따르면, 월요일에 사회과장과 복지계장을 직무유기와 허위문서 작성으로 의정부지청에 구속 지휘를 받으러 갈 것이라고 했다.

일요일 아침, 사회과장과 복지계장이 있는 유치장으로 찾아가 절대로 구속되는 일이 없을 것이니 안심하라고 위로했다.

의정부지청에서 재수사하라는 지휘가 내려왔다. 직무유기는 고의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허위문서 작성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했을 때, 허위라고 할 수 있는 것인데 수해로 인해 복잡한 관계 등을 감안할 때 허위로 볼 수 있는 증거 또한 부족하다는 결론이었다.

사회과장과 복지계장은 경찰서에서 풀려났고 사건은 재수사에 들어갔다.

경찰서장을 찾아가 의정부지청에서 재수사하는 것을 재검토하여 잘 처리해 달라고 모처럼 부탁을 했으나 경찰서장은 사건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의정부지청장을 찾아가 수해복구에 힘써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수해복구 상황을 보고하고 더불어 경향신문에 보도된 것이 허위보도로 확인된 이상 중앙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자문을 구하였더니 지청장은 알아서 처리할 테니, 중앙언론중재위원회에는 제소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 의견을 받아들여 제소하지 않았고 경찰서에서는 재수사 지시는 받았지만 재수사를 해보아야 새로운 사실이 나올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우리 직원들을 불기소 처분했다. 그 후, 기자실에서 일하던 여직원은 허위정보를 기자에게 제공하여, 파주시청의 명예를 훼손하였기 때문에 즉각 해임하고 확인도 하지 않고 제보한 지역 기자가 기자실을 출입한다는 것 또한 용인할 수 없었기에 기자실을 폐쇄 조치했다.

수해로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는 이재민에게 위로는 못할망정 허위 정보를 제공하여 공무원 사회에 불신을 조장하고, 수해 이재민과 파주시민에게 실망을 안겨준 그 기자는 마땅히 기자직을 그만두던지, 파주를 떠나던지 해야 했지만 한 치의 양심도 없는 듯 거리낌 없이 파주 시내를 거닐고 다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수사는 지나칠 정도로 위법적이고 부당한 일이었다. 영장이 떨어지지도 않았고, 도피의 우려도 없는데 사회과장과 복지계장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포승줄로 묶는가 하면 수갑을 채우고 수사를 했다는 사실이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위법수사였다. 그 후유증으로 ooo 사회과장은 소주를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고 잠을 자도 새벽까지 악몽에 시달렸다. ooo 복지계장은 눈만 감으면 자신이 수갑 차고 있는 모습에 시달리다 결국 공직생활까지 그만두는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고 문산이 재침수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문산 주민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밤낮 없이 뛰면서 재해대책예산 3,448억 원을 지원 받아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밤에 빗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아 배수장과 집수정을 내다보는 일 없이 이제는 편히 주무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간 괴롭고 어려운 일을 참으시면서 협조를 아끼지 않으신 파주시민과 특히, 문산읍 주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송달용 전 파주시장 회고록 연재 안내

1. 숨막히는 통일로 정비사업

2. 통일로변 주택의 슬레이트 지붕을 벗기다

<자료파일 제공 : 도서출판 헵시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