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변 주택의 슬레이트 지붕을 벗기다-제2화- 송달용 前파주시장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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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로변 주택의 슬레이트 지붕을 벗기다-제2화-

 

1978년 6월 13일, 강화부군수로 발령이 났다가 1979년 2월 1일 6개월 만에 다시 파주부군수로 발령이 났다. 파주로 돌아와 보니 남북적십자 회담과 카터 대통령의 한국방문을 대비한 통일로변 주택개량사업으로 180동의 물량이 파주에 배정되어 있었다.

당시 군수는 일시에 통일로 가시권내에 있는 모든 주택을 철거하고 주택개량을 한다는 것을 전 주민에게 설득할 수 없어 주택개량 능력이 있는 주민만 선택적으로 개량할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 내무부와 경기도 관계자가 현지를 확인하였으나, 돌아가는 국·내외 정세로 보아 파주군의 건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부는 당초 계획대로 추진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추진의 주체인 부군수를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이전에 통일로 정비에 경험이 있는 나를 파주부군수로 6개월 만에 다시 발령을 낸 것이었다.

뜻밖의 발령을 받고 통일로변 주택개량사업의 확고한 정부방침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나라고 뾰족한 방법이 있나? 다만 주택개량사업에 있어서는 자금문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이 주민들의 하겠다는 의사결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지난 통일로변 1차 사업에서 절실히 느꼈었다.

나는 주민이 사업에 동참하도록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통일로변 주택개량지역은 조리면, 금촌읍, 월롱면, 주내면, 문산읍 등으로 2개 읍, 3개 면, 32개 부락이 대상이었다. 우선, 부락단위로 주민을 설득하기로 했다. 하루 중 오전에 1개 부락, 오후에 2개 부락으로 계획을 세우고 1시간 내에 주민을 설득할 것을 목표로 삼았다.

먼저, 남북적십자 회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능력에 따라 주택규모를 결정하면 정부에서 주택융자금을‘5년 거치, 15년 상환’의 조건으로 지원할 것이며 모래와 시멘트는 무료로 지원해 줄 것이라고 주민들을 설득했다. 그래도 주택개량을 할 수 없다면 현재 주택을 평가하여 보상할 것이니, 가시지역이 아닌 타 지역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말했다. 그리고 주민들에게 집을 지을 때에는 첫째 예쁘게 짓고, 둘째 생활이 편리한 구조여야 하며, 셋째 자신의 능력에 맞게 지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덧붙여서 집을 짓는다는 것은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큰 대사이고 앞으로 집값이 오르면 올랐지 떨어지지 않는다는 확신을 그들에게 심어 주었다.

주민 설득 작업과 함께 주택개량사업의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도 건설국에서 운영하는 덤프트럭 다섯 대를 지원받아 읍·면에 한 대씩 배치하여 부락마다 모래 두세 대분을 마을 어귀나 공터에 쌓아 놓고 무료로 사용토록 했다. 그리고 직원은 1인당 5호씩, 계장은 한 개 부락, 과장은 세 개 부락을 담당토록 하여 주민의 애로사항과 건의사항을 즉시 해결해 주도록 했다.

주택개량사업을 위하여 집을 짓는 과정을 순서대로 작성한 대장을 만들어 배부하고 담당직원은 대장에 할당된 다섯 세대 주민의 성명을 기재하고 추진사항을 보고토록 하는 체제를 만들었다. 예를 들면, 집을 짓기 위해서는 집터를 파기 시작해서 콘크리트 타설 벽돌 쌓기 등을 거처 마지막으로 벽지만 바르면 주택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대장에 기재토록 했다.

군수와 나는 2개 읍, 3개 면, 180동에 대한 대장을 가지고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매일 오후 2시에 보고를 받았다. 군수와 나는 매일이지만 직원들은 1주일에 한 번 하는 보고였다. 오늘 터파기를 했다고 하면, 일주일 후에도 터파기를 한다고 보고할 수 없기 때문에 열심히 격려와 독려를 하여 허위보고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집 짓는 순서대로 대장에 진행상황을 ○표로 표시하여 다 채워지면 주택은 준공처리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주택개량사업은 급진적으로 진행이 되었다. 주민의 애로사항은 현장에서 바로 공무원이 해결해 줌으로써 주민들도 적극적으로 협조했고 3월 초, 추운 날씨에 천막을 치고 이사를 하면서도 하루가 다르게 주택개량이 진행되었다.

주택의 규모는 15평, 20평, 25평 중에서 자기 능력에 맞는 평수를 선택하면 융자지원을 하되 자부담이 가능한 사람은 융자규모에 관계없이 크게 지을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도 잊지 못할 일화가 있었다. 5월 중순, 내무부 이판석 주택과장이 통일로 주택개량사업 확인 차 출장을 왔다. 그때는 이미 주택규모와 집의 형태가 나타나 있었고 주택과장이 현지를 확인하면서 주택평수가 몇 평이냐고 물어보기에 사실대로 20평, 30평, 35평이라고 했다. 국민주택융자규정에 어긋나게 융자받은 평수를 초과하여 집을 지은 것은 위법이니 주택융자금을 받은 평 수 만큼만 지으라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면 강제징수와 공무원을 징계하겠다고 하고 내일 다시 와서 일일이 도보로 확인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귀청했다.

다음 날 과장은 국회 일로 못 오고 담당계장이 왔다. 주택개량과정을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통일로 주변을 자동차로 다니며 확인시켜 주었더니 “참, 수고가 많았다. 과장님의 말씀은 내가 책임을 지겠다.”고 하면서 돌아갔다.

그 후, 한 달쯤 지났을까? 당시 정성모 내무부장관이 일요일에 뉴코리아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 귀갓길에 통일로 주택개량사업의 지시사항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 궁금하여 임진각까지 둘러보고 간 것 같았다. 그리고 월요일 간부회의에서 “통일로 주택개량사업은 참으로 다양하게 잘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 주택개량사업은 통일로변과 같이 다양하게 집을 짓도록 하라”면서 “그동안 누가 가본 일이 있는가?”라고 물으니 대답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그 주 목요일, 내무부 이상배 개발담당관과 주택과장 그리고 담당계장이 현지 확인을 하러 와서 개발담당관 역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나는 주택과장에게“융자초과주택의 융자회수와 징계조치를 하시겠습니까?”하고 물으니 전에 한 말은 없었던 것으로 하자는 것이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통일로변 주택개량지역은 군사시설보호법에 의하여 군부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지역이었다. 만일 군부의 동의를 요청해서 부동의가 나오거나 타 지역으로 이전하여 건축하라고 할 경우, 주택개량사업을 할 수 없거나 지연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내가 책임을 지기로 하고 군부동의서를 보내지 않고 주민이 원하는 장소에 건축하도록 했다.

통일로변에 주택개량사업이 시작될 때부터 거의 완성단계 까지는 군부에서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그러나 완성단계에 이르자 1군단에서 소령을 반장으로 한 3인의 군인이 군사시설보호법 위법이라며 감사를 나왔다. 통일로변 주택개량 규모를 확인하고 동의를 받지 않아서 군 작전에 큰 장애가 있다며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엄포를 놓는 것이었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질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로변 주택사업 역시 국가사업입니다. 남북 간의 회담을 통하여 국력을 비교할 수 있는 중요한 사업이니 잘 판단해서 조치하여 주기 바랍니다.”라고 건의했고 군에서 감사를 하였으나 감사는 별다른 지시사항 없이 싱겁게 끝나 버렸다.

군사시설보호구역에서 그 큰 사업이 진행되었는데 군부대에서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면, 후일 책임 문제가 따를 것을 대비하기 위한 책임 피하기 감사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1979년 통일로 주택개량사업은 마무리되었다. 탁 트인 4차선 도로와 주변의 서구식 주택이 잘 정돈되어 있는 것이 마치 외국의 풍경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통일로 주택개량사업의 단점은 일조량을 감안하여 남향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 모두 도로변을 향하여 지었기 때문에 북향이 많다는 것이었다. 주민의 생활과 난방 문제는 전혀 고려되지 않은 일종의 전시행정의 산물이 되었다.

내무부에서 전 지역의 사진을 촬영하여 청와대에 보고하고 큰 칭찬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들려 큰 상이라도 기대하였는데 10.26 사건이 발생하여 통일로 주택개량사업은 역사 속에 묻혀 버렸다.

흉고직경(胸高直徑) 5㎝의 호리호리했던 은행나무가 40년이 흐르는 동안 잘 자라서 가을이면 거리가 노란 단풍으로 물이 들고 그 가로수 아래를 차를 타고 달리면 나비처럼 뒹구는 은행잎들과 아름다운 코스모스 길은 나를 아련한 추억에 잠기게 하곤 한다.

 

여기 짧은 시 한 편에 내 마음을 적어 본다.

 

통일로 은행나무 | 송달용

통일을 기원하며 정성껏 심은

흉고직경(胸高直徑) 5㎝ 은행나무

척박한 땅위에 모진 생명 지켜가며

40여년의 세월 따라 나이테는 늘어가도

 

통일의 소망은 기약 없고

해마다 어김없이 파란 옷, 노란 옷 곱게 갈아입고

통일의 그날을 애처로이 기다린다.

 

가을비에 파란 옷은 노란 옷으로 곱게 물들고

산들바람에 나비처럼 발랑거리며

뒹구는 그 모습만이 귀엽고 아름답구나.

주택개량 마을전경 (현재)
주택개량 (현재)
주택개량 (현재)
주택개량 (현재)

제1화 2016.4.18. 숨막히는 통일로 정비사업

 

<자료파일 제공 : 도서출판 헵시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