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막히는 통일로 정비사업 (제1화) – 송달용 前파주시장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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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막히는 통일로 정비사업 -제1화-

 

 1971년 6월 8일, 나는 지방과 주민등록 계장에서 파주군 내무과장으로 발령이 났다. 파주군이 참으로 어수선하던 시절이었다. 미군 2사단이 서서히 동두천으로 이동함에 따라 미군을 상대로 생계를 유지하던 기지촌 주민의 생계대책 마련과 미군부대 종사원의 직업전환, 폐허화되어 가는 기지촌의 마을정리, 미군부대 종사원들의 직업전환 대책 등 할 일이 많았다.

내가 내무과장으로 오게 된 것에는 정치적인 느낌이 있었다. 당시 청와대 건설농림담당 박명근 비서관은 국회의원 출마를 위해 물밑 작업으로 파주의 유력인사들과 접촉하고 있었다. 눈치 빠른 공무원들은 이에 편승하여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그와 만나고 있었다. 나는 박명근 비서관이 파주 출신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고 그 역시도 나에 대해서는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을 때였다.

박명근 비서관이 5.16 혁명의 주체세력인 신윤창 국회의원을 제치고 공화당의 공천으로 파주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후, 내무과장을 교체하려는데 마땅한 사람을 찾을 수가 없어서 박명근 의원의 행정자문 격인 월롱면 출신의 경기도 농정과장인 안응식 과장에게 추천을 의뢰한 모양이었다.

하루는 안응식 농정과장이 전화로 자신의 방으로 오라고 호출을 했다. 과장실로 찾아가니, 나를 파주군 내무과장으로 추천하였으니 그리 알고 내무과장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이미 박명근 의원이 김태경 지사에게 요청하여 총무과 인사계에 명령이 하달된 상태였다.

박명근 의원은 청와대 건설농림담당 비서관으로 있었고, 김태경 비서관은 행정담당 비서관으로 그와 같이 근무하다가 박 의원은 정치 쪽으로 가서 국회의원이 되었고, 김태경 비서관은 행정 쪽에 그대로 남아서 경기도지사가 되었다. 그런 친분으로 김 지사는 박 의원의 부탁을 무조건 들어주었을 것이다.

“안 과장님! 고향 선배로서 도와주시지는 못할망정 나를 두 단계나 낮은 내무과장으로 추천한 것은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나는 강력히 항의를 하였다.

보통 도에서 시·군의 내무과장으로 보내는 것은 사무관을 바라보는 계(係)의 차석(次席)인 주사(主事)를 보내는 것이 관례인데 사무관이 된 지방과 계장인 나를 내무과장으로 보내는 것은 유례없는 인사였다.

그는 내게 파주 내무과장으로 가는 것은 통일로변 정비사업에 발탁되어 가는 것이라고 하면 주위 사람들도 이해할 것이라고 하였다.

문산읍 마정리 소재
문산읍 마정리 소재

국도 1호선인 통일로를 구파발에서 임진강 독개다리까지 4차선으로 확장하는데 1개의 중견업체가 낙찰되어 도로 사업을 시공 중에 있었고, 정부에서는 시급을 요하는지 잔여 40㎞에 달하는 도로를 한국 제일의 건설업체인 현대건설을 비롯하여 10개 업체에 시한을 정하여 분할 시공토록 함으로써 통일로 전체가 온통 도로 공사판이 되어 있었다. 공사기간을 맞추기 위해 월롱면 위전리에 있는 송강교량을 시공하는데 추운 겨울인지라 시멘트 양성이 되지 않아 다리 전체를 천막으로 덮고 그 속에 연탄불을 피워 가며 시공 할 정도로 시간이 촉박하였다.

알고 보니 정부가 북한에게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을 제안하여 비밀리에 실무접촉을 하고 있었다. 회담이 성사될 것을 대비하여 도로확장은 물론 서울 구파발에서 임진강 독개다리까지 도로변의 가옥 전체를 정비하라는 청와대의 지시가 내려와 있는 상황이었다.

그 시절 파주에 있는 대부분의 집들은 미군부대에서 버린 사과나 감자 궤짝으로 울타리가 되어 있었고 지붕은 기름종이인 루핑(Roofing)으로 덮여 있는가 하면, 나지막하니 임시로 지어진 가옥들이 태반이었다. 그런 무질서하고 볼품없는 집들이 도로변에 몰려 있었다.

도로변 가옥의 정비는 새마을사업 차원으로 내무과에서 담당했다.

지붕을 슬레이트로 바꾸고 울타리는 모두 철거하여 벽돌로 쌓았으며, 볼품없는 작은 집들은 철거했고 가옥의 벽체는 시멘트를 바르고 슬레이트 지붕과 벽체는 모두 색칠을 하도록 했다. 처음에는 도로변에 인접되어 있는 것만 정비토록 하였으나, 사업 도중 도로에서 보이는 모든 집들까지도 확대하여 정비하도록 추가 지시가 내려왔다. 실태조사 후 추가 지시사항에 필요한 예산은 즉각 지원되었다.

모든 사업은 1971년 말까지 완료해야 한다는 절박한 상황이어서 도, 내무부, 중앙정보부, 청와대에서도 매일 상주하다시피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우리 공무원들도 다른 업무는 거의 중단하고 부락담당제를 실시하여 매일 추진사항을 보고하고 이를 취합하여 내일 할 일을 추가 지시하는 등 밤잠을 설쳐 가며 일 하였다.

도로변사업장은 목수와 미장, 철거공무원, 주민이 뒤엉켜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였다. 현장에 가면 누가 누구인지 지시할 사람을 가릴 수가 없어서 부락담당 공무원들에게는 오렌지색 모자를 착용하도록 했다. 그러니 멀리서도 공무원의 활동 상황 파악과 추가 지시 등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

그러나 문제는 지휘체계의 일원화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무부 직원이 벽과 지붕의 도색을 지시하여 도색을 하면 중앙정보부 직원이 다른 색으로 다시 칠하게 했고 청와대에서 나온 사람은 대통령께서는 미색을 좋아하니 미색으로 바꾸라 지시하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출지 몰랐다. 한 벽체를 두세 번을 칠하는 예도 허다했다. 그래서 신속한 사업추진을 위해 읍·면장에게 예산배정을 하고 집행토록 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통일로변 정비사업은 전국의 목수, 미장이, 페인트공, 주민, 공무원이 총 동원되어 전쟁을 하듯 사업을 추진하여 1971년 연말까지 외형상으로는 울긋불긋하게 깨끗이 정돈 되었다.

남과 북이 비밀리에 실무회담협의를 하여 1차 적십자회담은 1972년 8월 29일부터 평양에서 개최하고, 2차 회담은 같은 해 9월 12일부터 9월 16일까지 서울에서 개최하였다. 북한의 적십자대표단이 최초로 남한을 방문할 때, 통일로 주변에서 소를 키우는 가구를 일일이 점검하여 소고삐를 단단히 매도록 당부하고 개가 돌발적으로 통일로에 뛰어들지 못하도록 목줄을 사서 배부해 개를 꼭 매놓도록 했다. 금촌 장날, 우시장으로 가는 소들이 통일로에 소똥을 싸놓으면 그것을 치우기 위해 2인 1조로 물통을 들고 다니며 통일로를 청소했다.

이런 숨은 노력 끝에 남북적십자 회담은 무사히 끝이 났다.

그다음 해, 감사원에서 국비가 많이 지원된 통일로정비사업을 감사한다는 지시가 내려왔다. 이에 읍·면장과 총무계장 합동회의를 열어 감사에 대비한 증빙서류를 정비 점검하도록 하달하니 읍·면장과 총무계장은 증빙서류를 허위로 작성하기 전에는 도저히 할 수 없다고 했다.

한 집에 페인트를 두 번 내지 세 번씩 칠한 곳도 많고, 처음에는 가옥을 보수하라고 하여 보수한 곳에 나중에는 철거라는 지시가 내려져 철거한 곳이 허다하니 그 증빙서류들을 어떻게 맞추느냐는 것이었다. 일단은 그들에게 정비할 수 있는 데까지 사실대로 정비하라고 지시했다.

감사원에서 직원 두 명이 감사를 하러 왔다. 나는 그들에게 통일로사업에 대해 감사를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 건의했다. 그 이유인즉슨, 감사를 하려면 벽체에 페인트칠한 것을 벗겨서 정밀분석을 하여 몇 번 칠하였는지 확인을 해야 하고 보수 후 다시 철거를 한 집은 그에 필요한 증빙서류를 만들 수가 없어서 철거비용에 포함시켰다. 그 작은집을 철거하는데 예산이 과다 집행됐다고 변상하라고 하면 누가 변상을 해야 하나? 우리는 지시하는 대로 했을 뿐이고, 감사 후 지적사항에 대해 시정 안할 수도 없고 공무원이 변상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 감사 결과는 미해결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차라리 감사를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이 사업은 남북적십자 회담을 위한 국가정책사업이라고 감사원 직원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그리하여 통일로변 정비사업은 간신히 감사를 모면할 수 있었다. 우리 공무원들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도 징계와 변상을 해야 한다면 공무원의 사기 문제는 말할 것도 없으며 누가 열심히 일하겠는가? 다행히 감사를 하지 않음으로써 열심히 일한 보람을 느꼈다.

지금은 루핑지붕을 슬레이트로 바꾸고, 사과궤짝과 감자궤짝 울타리를 벽돌로 바꾼 흔적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통일로변 정비사업은 그렇게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자료파일 제공 :  도서출판 헵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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