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용감했다-윤인자

그녀가 지하다방에 와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나는 좀 놀랬다. 지금 그녀는 미국에 있어야 되는 것이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집에는 알리지 말라는 말부터 했다. 일주일 정도 한국에 있을 거라고 그녀가 미국에 사는 재미동포와 결혼하고 미국으로 들어간지 2년만의 일이고 내가 그녀의 편지를 마지막으로 받고 나서 삼 개월만의 일 이었다.

그녀는 편지에 이렇게 썼었다. 미국에 살고 있는 교포남자가 한국으로 결혼을 하러 나가는 것은 두 가지 이유인데 하나는 미국에서는 도저히 결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능한 사람이고 두 번째는 그 부모가 미국에서 자란 한국여자보다는 한국에서 자란 한국여자를 원하기 때문이라는 것 이였다 .

그러나 전자에 속하는 사람이 90프로는 되는 것 같고 자기 또한 90프로에 속하는 남자를 만난 것 같다는 내용 이였다. 그녀를 보는 순간 난 그 편지를 떠 올렸다. 하지만 그는 한국에서 정리할 것이 있어서 잠깐 나왔다는 말만했다. 그녀는 내게 다시 한번 자기가 한국에 나온 것을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가족 모르게 한국에서 정리할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솔직히 그녀를 보면 나는 항상 경이로움을 느끼고는 한다. 예쁘고 상냥하고 씩씩하고 가끔씩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입에 거품을 물고 쓸어 지는 일만 없다면 이다.

그녀와 헤어져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나는 그녀가 미국에서의 생활이 그리 편치 않다는 생각을 했다. 머리는 손질을 한지 오래됐는지 푸시시 해 보였고 언제나 메이커와 명품만을 고집하던 그녀의 옷차림은 한국에서 입었던 옷 그대로였던 것이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녀는 나보다 한 살 위의 사촌이다. 말이 한 살이지 그녀는 11월 생 나는 3월 생이다.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언제나 언니인 것이다. 그녀의 집은 그녀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서울로 이사를 했다. 아들 둘을 서울에서 공부시키겠다며 작은 엄마가 서울행을 감행하셨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 근처에 있는 제법 규모가 큰 건설회사에 취직을 했다. 그녀는 미모와 상냥함으로 주위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내가 방학 때 그녀의 사무실에 놀러 갔다가 느낀 바에 의하면 그렇다. 삼 년쯤 후 그녀는 대기업의 한 계열회사로 직장을 옮겼다.

나도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했지만 적응을 하지 못한 채 몇 군데를 옮겨 다니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학교의 모범생이 사회 생활에서도 모범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할 일 없이 도서관이나 서점 등에서 시간을 보내고는 했었다.

그러던 중 그녀의 소개로 한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 회사라는 곳이 그녀 회사에 물건을 납품하는 조그마한 하청업체였는데 남자 직원 몇 명에 여직원은 나 하나 뿐인 그런 곳 이였다. 거기다 퇴근까지 늦어 할 수 없이 그녀 집에서 다녀야만 했다.

그리고 내가 알게 된 사실 하나 그녀가 만나고 있는 남자가 있는데 그 남자는 말만하면 알만한 건설회사 회장의 아들 이였다. 그 남자의 아버지가 거래처인 그녀의 회사에 왔다가 그녀를 보고 마음에 들어 자기의 아들을 소개시켰다는 얘기를 작은 엄마한테 듣게 되었다.

내가 그 남자를 처음 본 것은 작은 집에서 살게되고 나서 몇 개월이 지나서였다. 그 당시 나는 주말이면 시골 집에 내려갔었고 그는 주말에 작은 집에 놀로 오고는 했던 까닭에 그와 부딪힐 일은 거의 없었다.

일요일 저녁 시골에서 올라와 보면 그녀의 집은 언제나 과일 상자와 음료수 박스가 쌓여 있었는데 부잣집 아들인 그는 그녀 집에 놀러 올 때면 언제나 먹을 것을 박스로 사오고는 했던 것 이였다. 그때까지 작은 집 식구와 나는 그녀가 그와 결혼 할 것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솔직히 작은 엄마는 큰딸인 그녀가 부잣집 며느리가 되어서 동생들 학비라도 보태 주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그 남자와 헤어지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앞으로 그 남자의 전화는 물론 집으로 절대 들이지 말라고 대기업에 근무 하다보니 그보다 똑똑하고 잘난 남자가 너무도 많다는 것이 이유였다. 지금의 그 남자는 돈밖에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녀가 그에게 어떤 식으로 헤어지자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남자는 매일 집 앞에 와서녀를 기다렸고 그녀는 그를 피해 친구 집에서 자거나 아니면 그가 갈 때까지 밖에서 배회하고는 했다. 집 앞 수퍼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면서 맥주를 마시는 그가 안스러워서 나는 그의 쓸데없는 얘기를 들으면서 그 앞에 몇 시간씩 앉아 있어야했고 그건 정말 괴로운 일 이였다.

그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고등학교 때까지 엄청 말썽쟁이였고 돈으로 들어간 대학에서도 적응을 못하고 속만 썩이는 아들 일본으로 보냈지만 그곳에서도 놀기만 하다가 한국으로 와서 그녀를 만났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가 그녀를 그에게 소개시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그는 돈만 많고 집안만 좋은 그러나 별 볼일 없는 남자의 표본 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솔직하고 착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기도 했다. 어쨌든 나만 그녀의 편이 되어 그와 헤어지는 것을 도왔다. 그렇게 그 남자와 헤어지고 나서 그녀는 몇 달만에 같은 계열사의 한 남자를 만났다. 그녀가 바라던 대로 똑똑하고 더욱이 집안까지 좋은…나도 그때 거래처의 한 사람을 알게되었다.

그는 우리회사보다 규모는 크지만 그의 회사 역시 그녀 회사에 물건을 납품하고 있었다. 업무상 티격태격 했지만 밉지 않은 사람 이였고 그와 친해지고 있을 무렵 나는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회사 야유회 때 그녀를 데리고 간 것 이였는데 많지 않은 직원가족들과 거래처의 몇몇 사람들을 초대한 그곳에서 그녀의 미모와 상냥함은 여지없이 빛을 발했다. 나를 절망하게 했던 건 오락시간에 행여 노래를 시킬까봐 뒤로 슬그머니 빠진 나와는 달리 그녀는 앞으로 나가 “낙랑18세”를 춤까지 곁들어 멋지게 불렀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는 행동들을 그녀는 너무도 쉽게 해냈던 것이다. 며칠 후 거래처의 그가 나에게 농담인지 진담인지 그녀를 소개시켜달라고 했고 나는 그에게 그녀가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와 그녀가 통화를 할 수 있게 해준 적은 몇 번 있었지만 그건 그냥 장난으로 한 행동 이였다. 그는 그녀가 좋아하는 부류의 사람은 아니다. 그는 그녀 회사의 담당자를 통해 그녀와 연락을 했고 회사직원들과 함께 저녁을 몇 번 먹었다는 것을 그녀로부터 들었다.

그리고 어느 일요일 그녀가 그와 둘이 야외로 놀러 갔었다는 것을 알았고 처음으로 그 둘의 만남에 화가 났었다. 아니 그녀에 대해 그녀는 그를 거래처의 한 사람 이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실 그녀는 그때 그렇게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회사의 같은 과 남자 직원하고도 연인처럼 가까워 나를 혼란스럽게 하기도 했는데 그건 그녀의 성격이였다. 모두에게 상냥하고 친절한 그녀의 성격. .얼마 후 그는 모든 책임을 나에게 돌렸고 자기의 상처를 치해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했지만 나는 그의 모든 말들을 무시했다. 그리고 나는 좀더 나은 곳으로 직장을 옮겼고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곧 잊었다.

그녀가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그 남자가 그의 집에서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여자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로 그녀에게 공부하기를 권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고 재수를 시작했고 그 남자의 가족들을 만났고 그 남자를 집에 소개시켰다.

그녀 말에 의하면 그 남자의 집은 부산에서 꽤 알려진 집안이고 가족 모두는 하나같이 의사니 판사니 했지만 그건 그녀가 약간의 과장을 했을 거라고 우리는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남자가 집에 왔을 때 약간 거만하게 보였던 것과 무엇인가 실망스러워 하던 표정과 말이 너무 없었던 것들을 놓치지 않았다.

작은집 가족은 아직도 옛날의 똑똑하지는 않았지만 붙임성 있고 착했던 그 남자를 좋아하고 있었던 것 이였다 그녀는 열심히 학원을 다녔다.

그리고 수능시험을 일주일 앞둔 어느 날 우리 모두는 청천병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는데 그것은 그 남자가 집에서 소개해준 비슷한 집안의 딸인 일류대학 출신의 약사하고 약혼한지 반달이 지났다는 얘기였고 그 남자가 집에 인사하고 간지 두 달만의 일이었다 그날 밤의 분위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작은 엄마의 한숨 동생들의 비통함, 분노 그녀의 울음 울고있는 그녀를 향해 나는 기어코 한마디 내뱉고 말았다.

시끄럽다고 옛날 일을 생각하라고. 나의 본심과는 상관없이 나온 말이지만 그녀는 자기가 죄를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대꾸했다. 남한테 하는 만큼 받는 것 같다고 그렇게 그날 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녀는 병원에 가지 않을 정도의 수면제를 먹었고 이틀인가 내내 잠만 자더니 학원에계속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꼭 좋은 대학에 갈 거라고 했지만 그녀의 시험성적은 좋지 않았다

그리고 겨울이 가기 전에 미국에 있는 어떤 남자를 소개받아 얼굴도 보지 않은 채 사진만 주고받고는 결혼을 결정해 버렸다. 그녀는 미국에 가서 . 기어코 성공해 그 남자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겠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가망 없는 일이다.

그녀의 결혼은 그렇게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미국에서 그녀의 남편 될 사람이 나오고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를 하고 남자가 먼저 들어가고 몇 개월인가 있다가 그녀가 미국으로 갔다.

처음 그녀의 결혼 상대를 보고는 우리 모두 실망을 했지만 그녀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결혼식 전날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참을 울었고 나는 자고 있는척했다. 그녀가 미국으로 가기 전 미안하다고 하면서 내게 전화번호 하나를 건냈다.

옛날 그 남자의 전화 번호였고 그때의 일에 대해 나에게 미안함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뜻밖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미국으로 떠났었다. 2년 전에….

그녀가 한국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일주일 후 미국으로 돌아갔다. 6개월쯤 지났을 무렵 내게 전화를 해왔다 미국 시민이 됐고 미국인변호사의 도움으로 남편과 이혼을 했으며 위자료는 한푼도 받지 않았다고 자리 잡을 때까지 가족에게 비밀로 해달라고 가족 누구도 그녀가 이혼을 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는 그녀의 부탁대로 비밀을 지켰다. 몇 년이 흘렀다. 그녀가 남동생 결혼 때문에 한국에 나왔다. 내가 놀랬던 것은 그녀가 남편과 딸아이를 동행했기 때문이였다. 그녀는 미국에서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결혼을 했던 것이다.

그 남자 역시 한국에서 가문 좋고 돈 많은 집 자식으로서 미국에 유학 갔다가 그녀를 만났고 그녀와 결혼을 함으로서 그곳에 정착을 했다. 그의 시댁에는 그녀의 과거를 비밀로 한 채…. 그녀는 미국에서 조그마한 여행사를 하나 하고 있다고 했고 모든 것이 안정되어 보였다. 그녀의 새로운 남편은 말이 별로 없었지만 처음 만남이라 어색해서 일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들이 미국에서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을 거라 믿었다. 작은 엄마가 지병인 심장병으로 갑자기 돌아 가셨다. 그녀가 귀국을 했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딸아이만 데리고 ….장례식이끝나고 며칠이 지난 후 그녀와 다시 만날 수 있었고 그녀가 두 번째 남편하고도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되었다.

일 안하고 놀기만 하는 남편 그녀의 돈을 물쓰듯하는 것도 모자라 그녀의 신용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려 신용사회인 미국에서 엄청 고생을 해야만했고 한국 그녀의 시댁은 이미 옛날의 그녀가 알고 있었던 그런 집안이 아이였다는 것과 몇 가지의 헤어질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이제 딸아이 하나만 키우면서 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가 의미 있게 하는 말 집안, 학벌, 돈 그런 것은 중요한게 아니라고…. 세상을 살아가는데그런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그녀는 그렇게 엄청난 대가를 치루고 나서야 그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녀가 미국으로 가고 얼마 후 내게 편지 한 장을 보내왔다. 초청장을 동봉해서였다. 편지의 내용은 이랬다. 옛날처럼 우리가 모여서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과 지금의 생활이 어렵고 힘들면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느것도 좋을 것 같다는… 환경을 바꾸어 보면 좋겠다는 그말에는 공감을 했지만 나는 그녀처럼 용감하지도 씩씩하지도 않은 까닭에 지금의 내 생활에 안주하고 말 것이다.

그녀가 언제 어느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녀가 지금까지처럼 씩씩하고 용감하게 자기의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2004. 7월 어느날>

윤인자(파주)
파주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