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 카페라떼 – 안연주

아이스 카페라떼

분명한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을 한다는 사실이다. 머릿속 가득 하고 싶은 말,
말로 글로 표현하고 싶지만 가만히 그려본다.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는가. 때론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을 간단한 스케치로 대신한다.

유난히도 유니크한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날이면 커피 한 잔으로 커다란 위로를 받는다.
커피는 나에게 술이요 담배요 말없는 친구다. 아니 그 이상의 의미일 수도 있겠다.
내게는….

한 번은 공인중개사 사무소 개업을 앞 둔 민원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간판을 달고 싶은데 시에서 의도하는 디자인으로는 하고 싶지 않다는 의견이었다.
이해한다. 내 가게 내 간판 내가 달겠다는데 시에서 이러쿵저러쿵하지 말라는 속내가 담겨있는
강한 어투였다.

하지만 내 집 앞 내 가게에 간판을 하나 달더라도 나 혼자만 살아가는 사회가 아니지 않은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 남에게 좋은 인상 좋은 이미지로 서로서로 양보해야 아름다운 도시미관을
형성해 나갈 텐데 이 분, 조금도 양보를 안 하신다.

중국 양삭- 파이자료모음

디자인을 말로는 다 표현해 보일 수는 없지만 신도시 지역의 아파트상가는 더욱이
내 가게 양 옆, 위, 아래 입점업소와의 조화를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기에 우선 말로라도
그 분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은 내 가게만 눈에 들어오겠지만 아파트 상가 모든 업소가
입점했을 경우 전체적인 조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간판도 관련 규정이 있으며,
허가나 신고를 득하기 위해서는 이러이러한 디자인으로 수정해야 한다….

성실한 답변을 드렸으나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이 분의 목소리.“당신 서울 시내 간판들 봤어?
은평 뉴타운에 설치 된 간판들 봤냐고! 거긴 간판들이 다 예뻐! 디자인을 생각하고 간판을 만들어야지
가만히 책상 앞에서 펜대나 굴리면서 법이나 운운하고 앉아있고 현장도 안나와보고 디자인 공부 좀 해!
디자인 공부 좀 하라고.” 머릿속이 텅 비는 느낌이다.
할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차라리 찾아오셨다면, 아파트 상가 전체 조감도 계획이라도 보여드리며,
그 분을 설득시킬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함께 건성으로 대답했지만 뭔가 모르게 씁쓸했다.
하지만 이어서 답변을 이어갔다. 간판이 설치되기 전에 현장을 확인하고 주변 전경을
살펴 관련 규정에 맞춰 그 입점 상가 건물에 어울리는 디자인 콘셉트를 정한 것이라는 등.
전화를 끊고 커피 한 잔을 타서 한 모금 마신다. 터져 나오는 한 숨을 단숨에 들이마시고
마음 수련을 해본다.

고교시절 시험기간이면 어머니께서 항상 정성스레 커피를 타 주시곤 했는데
그 때 마다 우유를 넣어 강한 커피의 맛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셨다.
(당시에는 커피숍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고 ‘카페라떼’라는 단어도 없었다.) 그 때 우유를
넣은 어머니의 마음은 이렇지 않았을까? 아직은 학생이라 커피를 마시게 하면 머리
나빠질까 걱정 한 스푼 덜고픈 마음과 흰 우유를 마시기 싫어했던 나에게 이렇게라도 우유 마시고
키도 크고 성적도 쑥쑥 올리라는 어머니의 당부 한 스푼이 담겨 있지 않았었을까 라는.

나 또한 간판을 달고자 방문하시는 민원 분들을 대할 때 어머니의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인정을 해 드리고 싶긴 하지만, 형평성의 논리에 맘 닫아 버리고, 이 정도면 여느 규정의
범위에서는 벗어나지만 유난히 돋보인다 생각했다가도 어쩔 수 없이 또 맘 닫아버리고.
하지만 조금씩 깨달아간다. 때론 어이없는 인신공격에 열 올라 씩씩 거릴 경우도 있었고,
광고주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득해 업그레이드 된 간판을 보면서 흐뭇해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특히나 요즘 같이 더운 여름에 에너지 절약으로 냉방은 안 되고 민원 분들과
이야기하면서 나도 모르게 얼굴이 상기되고 컴퓨터 열기에 더위 식힐 방법이 없을 때는 커피를 마신다.

대학에 진학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무수히 많은
깨달음을 얻으면서 커피와 인연을 맺었는데 나는 어쩌면 커피를 통해 소통하고 이해하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난 아이스 카페라떼다! 시원하고 부드럽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나만의
시민과의 소통 방법이랄까? 아무리 해결될 것 같지 않은 문제도 현장을 확인하고 주변 상황을 살피면
해결 방안이 그려진다. 정해진 틀 안에 가둬지기 보다는 조금 더 진보 된 생각 조금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동으로 그들 앞에 다가설 것이며, 그들의 마음에 시원하고
부드러운 라떼를 그려줄 생각이다.

< 파주문학동네 온라인문집 – 안연주 ① >

안연주
파주시청
공직자문학회원
파주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