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바꾼 여인 정난정- 파주의 여인들 3편

파주 교하 당하동 정난정 묘- 정난정-포스토

파주 교하지역 당하동에는 조선시대 유명했던 정난정(?~1565)의 묘가 있다. 정난정은 < 조선왕조 오백년 - 풍란,1985년>과 < 여인천하,2001년>이라는 TV드라마 소재로 나와 높은 시청률을 올리기도 하였다.
정난정의 아버지 정윤겸은 도총부 부총관을 역임힌 양반이었지만 어머니는 군영에 소속된 관비였다. 조선은 양반의 수를 제한하기 위해 양반과 천민중에 난 자식은 천민의 신분에 따른다는 종모법을 시행했다.

이 시대에 살아온 황진이(?1506~1567)도 천민 출신으로 기생으로 끝났지만 정난정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외명부에 정경부인으로 등재 되기도 하였다. 두 여인이 비록 천민 출신이지만 삶의 질곡은 너무나 다르게 살아 왔다.

정난정은 대대로 이어지는 천민 신분을 벗어 나기 위해 집을 나와 기생으로 입적하였고 문정왕후의 동생인 윤원형의 눈에 들어 첩이 되었다. 그 후에 본부인 김씨를 몰아내고 자신이 정처가 되었고 자신의 자녀를 적자녀로 올리는 등 천민에서 벗어 나려고 노력하였다.

윤원형의 천거로 문정왕후의 궁궐을 자유롭게 출입하면서 그녀의 권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당시에 그녀의 권력에 힘입으려고 사돈이 되려고 하는 양반들이 많이 있었고. 이런 권세로 그녀는 많은 재산을 모으며 부귀를 누렸다. 그러나 유교사회의 사대부들은 그녀를 연산군의 후궁 장녹수와 광해군때 상궁인 김개시처럼 악녀로 불렀다.

파주 교하 당하동 윤원형 묘비와 정난정 묘- 정난정-포스토
파주 교하 당하동 문정왕후 아버지 윤지임의 묘 정난정-포스토
파주 교하 당하동 파평윤씨 정정공파 향사와 56번 도로 정난정-포스토

윤원형은 누나인 문정왕후의 수태불공을 드리러 봉선사에 갔다가 보우대사의 소개로
정난정을 알게되었다. 처음 본 정난정이 마음에 들자 윤원형은 중전 윤씨의 동생이라는 신분으로 당시 도총관이었던 정난정 부친에게 소실로 줄 것을 애청하였다. 이에 정난정은 아들을 낳으면 정실부인이 되게 해준다는 서약서를 받고 첩 소실이 되었다.

정난정이 혼기가 되었을때 주위에서 청혼이 많았지만 모두 소실로 가는 혼사이어서 매몰차게 거절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윤원형이 자신과 같이 불교에 대한 신앙심이 깊고 천민을 무시하지 않은 성격과 신분상승의 기회를 갖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것때문에 소실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난정이 낳은 자식들은 종모법에 따라 천적에 오를 수 밖에 없었지만 문정왕후를 통하여 다른 적자에게 통혼할 수 있는 전교를 내리게 하여 천인을 벗어 날 수 있게되였다.. 또 이것에 만족하지 않고 윤원형에게 서자도 적자와 같이 벼슬길에 오를 수 있도록 ‘서얼허통법’을 상소하여 당시 신분제도의 근간을 바꾸게 하였다.

그러나 사대부들은 정난정이 문정왕후를 이용하여 불교를 재건하려 했을뿐 아니라 적자와 서자의 구별을 철폐한 배후로 지목하고 문정왕후가 죽기만을 기다렸다 .

서울 노원구 태릉 문정왕후 묘- 정난정-포스토
서울 태릉 문정왕후를 지키는 문인석- 정난정-포스토
서울 태릉 문정왕후의 도장인 어보- 정난정-포스토
서울 노원구 강릉 명종과 인순왕후 묘- 정난정-포스토
양주 회암사지 정문계단 – 정난정-포스토

정난정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남편 윤원형의 누나이면서 중종의 3번째 왕비인 문정왕후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정왕후는 아들인 명종이 10살에 왕위를 계승하자 수렴첨정을 명분으로 조정의 권력을 한 손에 잡았다.

문정왕후는 궁중에서 개인적으로 불교를 신봉하였지만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었고 정난정이 해다다 2~3차례씩 한강에 가서 물고기에게 밥을 주는 공양을 매우 기특하게 생각하였다.

이에 정난정은 문정왕후의 불교에 대한 깊은 신앙심을 알아차리고 자신을 윤원형에게 소개했던 보우대사를 문정왕후에 알현시겼다. 문정왕후는 그를 선종판사로 등용하고 불교를 공개적으로 부흥 시켰을뿐 아니라 도첩제를 부활시켜 승려들의 신분을 보장하였다.

명종의 아들 순회세자가 13살에 죽고 즉위한지 20년이 되어도 후사가 없자 문정왕후는 보우대사와 함께 양주 회암사에서 많은 시주를 하는 무차대회를 열어 득남을 기원하였다.
문정왕후는 조선의 사직을 잇기 위해 기도행사를 간절한 마음에서 지냈지만 수십일이 지나면서 병환이 생겨 갑자기 사망하게 되었다.

파주 교하 당하동 정난정 묘지 5백원 동전 기도- 정난정-포스토

1965년 문정왕후가 죽자 조정에서는 명종의 뜻을 알아 차리고 그동안의 외척의 악행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우선 승려 보우는 제주도로 귀양보내 사사시겼고 정난정은 본래 신분인 천인으로 강등시켰다. 이후에도 계속적인 사대부의 탄핵으로 남편 윤원형과 함께 황해도 강음 (현재 금천)으로 유배 되었다. 그러나 윤원형의 전 부인인 연안 김씨의 계모 강씨가 정난정이 김씨를 독살했다고 의금부 고발했다. 이 사건으로 점차 불리해지자 평상시 몸에 갖고 있던 독약을 먹고 자결했다.

전 부인을 독살한 것은 윤원형도 알고 있었고 정난정은 이 사건으로 고문을 당할것이 두려워 늘 비산을 지니고 다녔었다. 어느 날 집안 하인이 잘못 알고 의금부에서 잡으러 온다고 알리는 바람에 급히 자살하였고 윤원형도 술에 탄 독을 마시고 곧 자결했다고 한다.

정난정에 대한 사대부의 평가는 후하지 않았다. 그들은 ‘출세를 위해 권력자를 유혹한 여인’ 또는 ‘윤원형의 본처를 독삭한 표독스런 여자’로 말하지만 그녀가 영리하였고 불교에 대한 신암심이 깊었기 때문에 문정왕후가 그녀를 앞세워 불교를 중흥하려고 했었을 것이다.또 양반가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 놓은 서자 차별법을 바꾸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 여인으로도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난정의 묘는 파평윤씨 정정공파 묘역에 있는 윤원형의 묘 옆 뒤에 일반인 크기의 봉분과 비석으로 이루어져있다. 전체적인 형상은 윤원형의 묘역에 포함 되어 있으나 본처가 아니라서 합장은 되지 않은것 같다. 정난정의 묘에는 당시 묘비가 없었지만 후손들이 윤원형의 부인으로 인정하여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정난정은 다른 여인들과는 달리 기가 넘친다고 한다. 지금도 그녀의 기를 받기 위해 정난정의 묘에서 기도하는 이가 있다. 추운 겨울날에도 정난정 정난정 묘비에는 오백원짜리 동전이 올려져 있었다. 아직까지 정난정은 그 시대의 기운을 갖다 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 글.사진 이기상>

* 화완옹주가 사랑한 권력 – 파주의 여인들 2편 http://www.phosto.kr/?p=1320

* 기생 홀랑의 지독한 사랑 – 파주의 여인들 1편 http://www.phosto.kr/?p=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