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기행 2

보낸 사람

파주지역은 군사적 요충지로서 군장병이 많이 근무하고 서울과 인접하여 통일로변에는 파주군의 봉일천, 고양군의 삼송리, 서울의 구파발에 군 검문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70년대말까지는 한국군헌병과 미군도 함께 근무하면서 통일로를 통과하는 버스와 차량을 검문하였고 군인의 위수지역 이탈이나 미군수 물자 유출 단속을 병행하였다.

통일로는 79.12.12에 발생한 쿠데타 당시 파주시 아동동에 위치한 제2기갑 여단이 전차35대와 장병 186명이 육군제9사단 29연대와 통일로에서 합류하여 중앙청을 점령하고 그해 12.17일 쿠데타에 성공하고 복귀하였던 역사를 갖고 있다.

이 당시 71방위사단장인 백운택 중장은 당시 제2기갑여단장 이상규 중장에게 전화를 걸어 수도기갑사단 전차에 대항할 수 있는 전차부대의 동원을 요청하여 이루어 졌다.

조선시대 이후 한국이 근대화 되면서 통일로는 파주시의 동맥과 같은 존재였다. 먼지가 뽀얗게 일어 나는 비포장도로를 마이크로버스가 시골길을 달리고 서울 홍은동을 왕복하는 버스에는 학생과 미군 물자를 내다 파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래서 옛날 고양군까지 관할 하던 파주세무서가 금촌에 있었다.

통일로를 통하여 들어 오는 파주입구에는 커다란 성문이 도로 한 가운데를 막고 있다. 한국전쟁시 임진강 철교를 통과하여 통일로로 진격해오던 전차에 밀려서 후퇴하였던 경험으로 통일로에는 대전차 방어용 방호벽이 여러 곳에 설치되어있다.

이 방호벽은 전쟁시 구조물에 폭약을 설치하여 도로 한 가운데로 무너뜨려 적의 전차를 5분 정도 지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방호벽을 막 지나면 검문소가 있는데 원래는 봉일천 입구 삼거리에 있던것을 1980년대쯤 지금의 자리로 이전되었다. 광탄면 분수리에서 연결되는 도로가 개설되면서 이곳으로 이동된 것으로 추측된다.

개설된 이도로 우측으로 2km정도 가면 자연발생적으로 공장들이 집단화된 장곡산업단지가 있고 좀 지나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포철야구장이었던 곳이 골프장으로 바뀐 곳이 나타난다. 이 골프장 앞을 직진하면 장곡저수지가 있는데 좌측에는 하니랜드라는 유원지가 있고 우측에는 장곡리 마을이 있다.

장곡리 검문소를 막지나 좌측에 프로스펙스, 파크랜드 등 유명 의류메이커 20여개가 업소가 우후죽순식으로 산재되어있다. 일명 장곡패션타운이라 할 만하다.

이 상가들은 통일로 옆에 위치하여 따로 광고할 필요가 없고 주차하기가 쉬워 요즘 경기가 안 좋다고 하여도 찾는 사람이 많이 있다. 이 상가들의 인심도 넉넉하다. 좀 가격이 비싼 것은 사장에게 귓속말로 조용히 이야기하면 깍아 주기도 한다.

장곡 패션타운을 막지나면 1996년도에 파주시가 시 소유의 토지를 농협에게 무상임대해 주어 건립된 농협하나로 마트가있다. 그 당시 파주 지역에 대형마트가 없던 시기라서 상당히 매출규모가 컸었지만 지금은 금촌 시내의 여러개의 대형마트와 교하에 이마트, 문산에 홈플러스 등이 생겨 예전만 못하다.
<다음에 계속, 2011. 1.6, 이기상>